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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Oct 23. 2019

거울아 거울아 왕비가 백설공주보다 더 예쁘던데

진짜 더 예뻤는데


내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 우리 엄마가 나에게 읽어 주셨을지도 모르는 동화책들 말고

내가 '자력'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처음 내 손에 들려진 동화책은 총 20권짜리 '어린이 세계명작'이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안데르센 동화, 그림형제 동화 등등 막 섞여있었는데 알록달록 예쁘게 채색된 그림이 페이지마다 많이 들어있는 동화책이었다.

동화책답게 온갖 '공주' 관련 이야기들은 거의 다 들어 있었다.

인어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백설공주, 신데렐라, 콩쥐팥쥐(얘네들은 공주는 아니지만) 등등.

나는 고심 끝에(5살 어린이의 고심) 제일 처음 백설공주를 골랐다.


나는 그 날 이후로 여태껏 '백설공주' 이야기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읽었던 동화책에 나오는 백설공주는 요즘 예쁘게 다듬어진 백설공주가 아닌 '오리지널' 백설공주였다.

대략 이런 모습의 백설공주.

엥???

아... 쫌 실망

피부는 백설처럼 하얗고 머리는 흑단처럼 검고 입술은 장미처럼 빨갛다더니.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내 맘에는 썩 와 닿지 않던 백설 공주님.


그러다가 빳빳한 동화 책장을 몇 장 넘기자 드디어 백설공주 아버지 왕의 새 왕비 등장!

인텔리전트 하기까지


이후 백설공주가 왕궁에서 쫓겨나 숲 속 일곱 난쟁이와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은 내 관심 밖으로 많이 밀려나고

나는 동화책을 읽는 내내 왜 백설공주 새엄마 왕비는 백설공주의 미모를 질투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다섯 살 꼬꼬마 여자애가 동화책에 나온 그림만 가지고 평가해도 '새 왕비'의 미모는 훌륭했다.

심지어 키도 크고 손가락과 팔의 동작도 우아~해 보였다.

동화책에서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보는데도 왕비의 몸놀림이 상상될 정도였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백설공주보다 새 왕비가 더 예쁘다 라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는 않았다.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냥 그때의 감정을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만일 내가 "엄마, 나는 백설공주보다 왕비가 더 예뻐"라고 말하면 나는 나쁜 '왕비' 에게 동조하는 '나쁜 아이'가 되는 듯 한 느낌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린애가 뭘 그리도 재고 따지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느꼈으면 그대로 말해도 상관없었을 것을.


하여간 다섯 살에 잃어버린 백설공주에 대한 흥미는 오랜 시간이 흘러 내가 엄마가 된 이후에도 이어져서

나는 내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백설공주 동화책을 읽어 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늘 오후에. 정말 수십 년 만에 어떤 어린아이에게 '백설공주' 동화책을 읽어 줄 일이 있었다. 무려 영어로.

삽화는 수십 년 전 내가 읽었던 그림과 비슷했다. 오리지널 백설공주/왕비 그림은 아닌 약간 변형시킨 것이었다.

읽으면서 생각했다.

영어로 읽으나 한글로 읽으나 백설공주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답답~ 하고

마법의 거울이 떠들어댄 아무 말 대잔치에서 이 모든 비극이 시작.

미모는 역시 새 왕비가 우세.

새 왕비 본인이 이 사실을 진즉에 알아 쓸데없는 질투와 미모에 목숨을 걸지 말고

다른 쪽 재능(화학에 재능이 있어 뵈던데)을 발전시켰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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