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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an 25. 2020

예배당에 피어나는   손세정제 냄새

퓨렐 purell 만만세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손세정제 냄새였다.

옆에 앉아있던 남편과 눈이 딱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알아 들었다.

'내가 맡은 냄새가 그거 맞지?' '응, 그거 맞지'

다른 쪽 옆에 앉아 있던 아들 녀석이 팔꿈치로 내 팔꿈치를 두 번 쳤다. 얘는 복화술을 하는 것처럼

입을 움직이지 않고 한국말로 말했다. "이거 핸드 새니타이저 냄샌데?"

손세정제라고 말했어야지, 얘야.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다 알아차리겠다. 얘야

가운데 앉았던 나는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며 '쉿~' 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양쪽에 앉은 우리 집 남자들에게

동요하지 말자 라는 듯한 사인을 보냈다.

11월 어느 일요일. 맨해튼에 위치한 어느 교회 11시 예배 시간이었다.

캬... 겨울. 맨해튼, 교회. 예배시간.

손세정제.

대단하구나 싶었다.




예배 시간 중간쯤 있는 시간.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악수하고 인사하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이 늘 뻘쭘하다.

예전부터도 뻘쭘했고 지금도 뻘쭘하다.

대략 1~2분 정도 주어지는 이 시간에 사람들은 본인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위치한 사람들과 악수를 하게 된다. 그냥 목례만 까딱할 수는 없는 구조. 악수는 그냥 기본이다.

동서남북에 위치했던 사람들 중에 혹시 맘씨 좋아 보이는 백발노인이 계셨더라면 가벼운 '허그' 도 일어날 수 있다. 볼은 닿지 않을 것이다.

일단 동서남북 기본 4명에다가 조금 더 확장시켜 동서남북의 옆의 옆 사람까지 인사를 나누면 6~10명 사이로

악수를 나눈 인원은 늘어나기도 한다.

악수에도 성격이 묻어나고 각자 개성들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손을 너무 꽉 쥐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의 손은 축축하고 또 어떤 사람들의 손바닥은 이미 나와 악수를 정말 정말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그런 악수도 있고. 그래서 예배 시간 중간에 떡하니 껴있는 이 순서가 나에게는 어렵다.

6-10번의 악수를 하고 짧은 인사를 나누다 보면 에너지가 확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을 하자면.

나도 가방 안에 있는 손세정제가 함유된 개별포장 티슈를 꺼내서 손을 닦고 싶었다. 정말 그랬다.

아... 꺼내고 싶다. 아.... 정말 포장지를 찌이익 뜯어서 손을 닦고 싶다. 그랬다.

나의 모든 가방 안에는 늘 최소한 3개 이상의 개별포장 티슈가 들어있으니 옆에 앉은 남편에게도 하나 주고

아들 녀석에게도 하나 주고 손을 닦으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방에서 손세정제가 함유된 개별포장 티슈를 꺼내 손을 살며시 닦는 것을 내 동서남북, 그 옆 옆 사람들이 본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염려가 되었다. 내가 내 손을 지킨답시고 그들의 손을 병균이 뭍은

더러운 손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고 반대로  남들이 나를 세균 염려증 환자처럼 볼까 싶은 염려도 들었고 짧은 시간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아.... 늦었어. 이미 그런 제품을 꺼낼 타이밍을 놓쳤다는 판단을 내렸을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예배당 안에 강하게 퍼지는 그 손세정제 냄새를 맡아 버린 것이었다.

너무도 강해서 코를 확 찌르는 듯했다. 한두 명이 만들어내는 냄새가 아니었다. 이건.

이 냄새는 내 가방에 들어있는 그런 종류의 티슈(소극적)가 아니고 걸쭉한 액체 상태의 정말, 진짜, 손세정제 바로 그것이었다. 용기 안에 들어있는 투명한 물질.


개별포장 사랑합니다


악수가 끝나고 다들 자기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쥐 죽은 듯 조용한 그 예배당 안에서. 그 조용한 시간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금살금 가방을 열거나 가방에 붙은 지퍼를 열거나 아니면 아예 가방 밖으로 대롱대롱

클립으로 달고 다니던 자기들의 핸드 세니타이저를 꺼낸 후

얼굴과 눈은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은 세정제 용기를 뚜껑을 열고 내용물 적당량을 손바닥에 덜은 후 맹렬하게

두 손바닥과 손가락을 비비고 오물거리며 '세균'을 퇴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고 판단을 내린 후이기도 했고

갑자기 예배당 안에 '퓨렐(대표적인 브랜드)' 냄새가 가득 해지는 것을 경험을 하고 보니 그냥 또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고 등등. 하여 결국 예배시간 도중에 손을 닦지는 않았다. 냄새를 맡고 나자 그런 열망이 사라졌다.


두어 달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날 생각을 자주 골똘히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내가 영양가 없고 소모적인 생각에 시간을 낭비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 그 장소가 교회, 예배당 안이라서, 예배 시간이었기 때문에 생각을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건가?

그 해프닝이 만약 그냥 여느 관공서, 시청, 도서관, 공연장, 강의실, 그런 곳에서 벌어진 것이었더면 다시는 생각도 안 날 일이었을까?

요 며칠 전 세계를 술렁이게 만드는 중국발 바이러스 뉴스를 접하고 이젠 북반구 남반구 할 것 없이 확진 환자들이 발표되는 상황을 보며 다가오는 이번 일요일(주일), 세계 곳곳의 예배당 안에서 보다 더 강하게 풍길 것이 뻔한 '손 세정제' 냄새가 생생히 맡아진다. 벌써. 아직 금요일 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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