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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Apr 21. 2020

클로락스와 91% 알코올

왜 아직도 이런 게 품절인지 

나는 2020년 4월 이전까지는 이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이 두 가지 제품을 내 돈을 주고 사본 적이 없었다.

마스크 2개 + 91% 알코올+ 클로락스 와입=신흥갑부


내가 조그마한 내 살림을 꾸리는 데 있어서 91% 알코올을 어디에 사용하겠으며

클로락스 와입으로 어딜 빡빡 닦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3월 중순부터 이 두 가지 제품을 구하려 낮이건 밤이건 눈이 빠져라 검색을 하고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온라인 스탁을 잡아 장바구니에 넣는 것까지는 성공을 했는데

 결제를 진행하는 동안 품절이 되는 신기한 일을 580번쯤 겪다 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이것들이 갖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상황으로 변해갔다.

이것이 꼭 있어야 병균을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이것이 없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마트에 가봤자 구할 수 없다는 확신 1000%

온라인에서는 클릭과 새로고침을 1000번쯤 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그런 기괴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91% 알코올 2 통과 클로락스 와입 3통을 주문하는 데에 성공을 하고

그 밤, 그 새벽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잠을 잤다는 건 안 비밀.

동부와 서부의 시간차가 3시간인 이 나라에서 그나마 온라인 주문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서부까지 모두 잠에 빠져드는 새벽 3시 이후가 가장 높다 (내가 만든 이론)


그러다가 생각했다.

91% 알코올과 클로락스 와입으로 내 마음에 잠시나마 이런 평안이 온다는 게 너무 웃기지 않나


나는 91% 알코올을 솔직히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어서

이것을 바이러스 퇴치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려 온갖 검색엔진과

유튜브를 들여다봤다.

심지어 알코올 함유량 70%로 맞추려고 방정식도 풀었다. 방. 정. 식. 

(어쩌면 방정식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세상엔 존재하겠지)

베이킹에 사용하는 저울, 비커, 스포이드까지 총출동을 시켰다.

클로락스 냄새를 극도로 싫어했고 이토록 강력한 약품까지 사용해가며 박멸시킬 병균이 내 집안에 있을까

생각하던 내가 왜 이것이 갖고 싶어 안달을 하고 전전긍긍하고 불안해했는지 막상 주문에 성공을 하고 나자

좀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만 있으면 나와 내 가족은 코로나 19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혼자 부끄러워졌다.


지금도. 아직도

이 두 가지 제품은 미국 안에서 구하기 참으로 어렵다. 

사람들이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차분해지면 사재기 열풍도 잠잠해지고 다시 생필품 구입이 어렵지 않았던

예전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모두 다 흥분할 때 나라도 한 달만 냉정해서 끓어오르는 온도를 낮추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좀처럼 끝이 보이질 않고

한달 전 평정심을 잃지말자 잃지말자 주문을 외던 내가. 

좀 후회가 된다. 

이런 후회를 혼자서 조용히 남모르게 하고 있는 내가 참 찌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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