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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l 15. 2020

마침내 나도 캐런을 목격했다

마스크 진상 남자 캐런- Man Karen

때는 바야흐로 오늘 아침이었다.

아마존에서 배송받은 물건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아마존으로 돌려보내려 동네 UPS에 갔다.

아침부터 해는 따갑고 끈적끈적 불쾌지수가 높았다.

나는 다행히 스토어 앞에 바로 주차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 거기에 차를 댔다.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손에 비닐장갑을 낄까 말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일을 다 마치고 차에 와서

박박 잘 닦기로 마음을 먹고 장갑을 끼지는 않았다. 그리고 물건을 가지고 상점으로 들어가려는데

출입문 안쪽으로 바로 문앞에 바짝 붙어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문을 당겼다면 그가 깜짝 놀랄 수도 있을 만큼 바짝 붙어서 서 있는 것을 보니 소셜 디스턴스를 유지하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유리창으로 매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직원, 직원이 상대하고 있는 손님 한 명, 그리고 문 앞에 바짝 붙은 남자 한 명. 그리고 컴퓨터 작업을 하는

다른 직원 한 명. 이렇게 총 4명의 사람이 있었다.

곧 손님 한 명이 일을 끝내고 나왔고 문 앞에 바짝 붙었던 남자는 직원 앞으로 갔고 나는 상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땡볕에서 약 2분 정도 서 있었다.




막상 상점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공간이 꽤 확보가 되어 굳이 내가 출입문에 바짝 서 있지 않아도

앞사람과의 거리를 15 ft 이상 떨어뜨릴 수 있어서 나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누군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 오다가 내 등을 스치거나 건드리는 불상사를 막고 싶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드디어 등장. 두둥! 남자 캐런

그는 우당탕탕 하면서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왔다.

내가 만약 몇 걸음 앞으로 서 있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는 내 등을 밀쳤거나 그의 옆구리에 끼고 있던 기다란 모양의 상자로 나를 쳐서 넘어뜨렸을 것이다.

그는 백인 남자였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으며, 결정적으로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아, 그는 입을 가리고 있긴 했다. 잔망스러운 크기의 천을 세모로 접어 코는 가리지 않은 채 입만 가리고 뒤통수에서 매듭을 지은 모양새로 입장했다.

내가 요즘 제일 싫어하는 타입의 입 가리개 형태였다.

점원은 그에게 소셜디스턴싱 중이니 바깥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딱 한마디 했다. 바깥에서 기다리라고. 그 어디에도 잘못된 것 없었다.

그런데 그 남자 캐런이 속사포처럼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현실에서 속사포 같은 영어 욕을 들었다.

대략 옮겨보면

뭐라고? 이런 삐리리 나더러 지금 밖에서 기다리라고? 왜?
이런 삐리리 나는 그저 이걸 드랍만 하면 되는데 삐리리
(점원: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야. 이 사람들도 드랍하러 온 거야)
뭐라고? 이 삐리리야! 너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 삐리리
이런 거지 같은 삐리리 같은 상점을 보았나. 아 이런 망할 삐리리

얼마나 많은 F 욕을 짧은 시간에 하던지.

지금 내 등 뒤에서 들은 말을 한국말로 듣는 게 더 험악할까 이렇게 영어로 듣는 게 더 험악할까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점원은 흡사 마이클 조던처럼 생긴 근육질의 흑인 아저씨였는데

모두들 그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물며 나 같은 사람도 말이다.

신경 쓰지 마/ 정신 나간 삐리리/ 그냥 무시해/ 쓰레기/ 무시가 답이다/ 대꾸도 하지 마 등등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내 일은 그 점원이 스캐너로 스캔만 한번 하고 영수증을 뽑아 주면 끝나는 일이라서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험난한 날이네요(점원: 그러게 아직도 화요일이라니)
고마워. 조심하세요 (점원: 고마워요 너도 조심하세요)




딱히 물어볼 데가 없어서 '시리 Siri' 에게 물어봤다.

캐런의 남자 버전은 뭐라고 부르니? 그랬더니 주인님 당신이 찾는 정보들이 여기에 있군요. 하면서 몇몇 웹사이트들을 보여주었다.

찬찬히 읽고 연구해보니(할 일이 그렇게 없냐. 그렇다. 없다)

케빈, 켄, 카일, 리챠드, 앤디, 이안, 프랭크, 랜디 등등 아직 딱 이거다! 하는 이름으로 정해지진 않은 모양이다.

부디 바라건대

내가 상점에서 떠난 뒤에도 별 일 없이, 무탈하게 그 직원이 오늘의 일과를 잘 마쳤기를 바래본다.



사진-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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