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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Sep 07. 2020

설교는 17분만

우리 엄마와 같은 해에 태어난 내 친구 B는(버지니아 출신, 주립대 교수 남편과 아들 둘을 둔 백인 할머니)

정말로 저렇게 웃으면서 말했다. 덧붙인 단어가 하나 더 있긴 했다.

정확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장로교인(presbyterian) 중에서 17분 넘는 설교를 참는 사람들이 있어?
  

당시엔 17분 설교라는 말이 하도 내게 신선해서 나는 왜 하필이면 17분이냐고 되묻지 못했다.  

왜 18분도 16분도 아닌 17분인지 그게 지금에서야 궁금하다.


내 평생 17분 안에 끝나는 설교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B에게 말했다.

70분짜리 설교는 많이 들어봤어도 내 평생을 통틀어 17분짜리 일요일 11시 정규(?) 예배 설교는

경험해 본 적 없다고. 그녀도 내 말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다니는 교회 일요일 11시 예배에  출동을 해봤다.

한국 장로교에 익숙한 우리는 미국 장로교회의 예배 형식이 조금 어색한 점이 있었지만 거슬리고 불편한 예배 순서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예배드릴 수 있었다.

많은 회중 속에서 B를 찾는 일은 쉬웠다. 그녀는 그 날 예배의 올갠 연주자였다. 우리가 예배당 안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대망의 설교 시간.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시계를 흘깃 티 안 나게 확인했다. 신성한 예배 시간에 이렇게나 '요망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시계를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설교는 특이할 것도, 유달리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물론 내가 영어를 다 잘 알아듣지 못해서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설교였다.

그런데! 정말로!

17분 만에 끝났다. 진짜. 진짜 진짜.

자, 이제 도입 부분 끝났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나 보다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설교가 끝났다.

11시 정각에 시작한 예배는 정확히 11시 58분에 끝났다.

세상에나! 나는 이렇게 간결하게 끝나는 일요일 예배는 처음이야!




설교가 17분이면 어떻고 70분이면 어떠랴.

문제는 17분 동안, 혹은 70분 동안 입 꼭 다물고 집중해서 잘 들으려고 노력에 노력을 했는데 내 귀에 들린 소리라고는 차라리 안 들었으면 더 좋았을법한 말들만 가득일 때가 낭패인 것이다.

70분 동안 일방적으로 앉아서 당해야만 하는 고막 테러를 참느라 화를 억누르고 분을 참고 벌떡 일어나서

뒤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싶은 욕망과 싸우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자책했던 수많은 설교 시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 이후 요즘은  만약 어떤 목사가 설교 시간 내내 70분짜리 (혹은 17분)막말 헛소리 대잔치를 한다면 그걸 끝까지 듣지 않아도 되고 클릭 한번이면 내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있게 되었다.

비대면예배(이 단어 참 싫다. 그냥 어감 자체가 싫다)의 순기능이자 역기능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소위 요즘 '핫' 한 설교자들의 온라인 셜교 길이는 25-28분 정도 되는 것 같다.


사진-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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