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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Sep 11. 2020

콩떡이 좋다. 늙었나 보다.

이런 떡을 도대체 왜 먹나.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100가지 떡이 있다 치고 등수를 매기면 이런 콩콩콩콩떡은 98등 정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겉에 아무것도 묻히지 않고 속에 아무런 소도 넣지 않은 '절편' 이 콩떡보다 몇 배는 더 내 입맛에 좋았다. 쫀득한 떡이 씹힐 때 입안에서 동글동글 같이 돌아다니는 '콩' 그 콩콩콩콩의 식감이 거슬렸다.

어릴 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갑자기 어제저녁에 떡을 쪘다.

한인마트 냉동 코너에 꽝꽝 얼린 쌀가루를 파는데 그걸 무작정 한 봉지 지난주에 사 왔던 게 기억났다. 

먹어 치워야 한다.

20년도 넘은 찜기용 물솥과 대나무 찜기를 꺼냈다.

요리, 떡, 제과 제빵에 심취했던 젊은 날 한국에서부터 쓰던 걸 여기까지 가져온 나님에게 셀프 칭찬.

쌀가루에 물을 주고 체에 곱게 내리고 설탕을 조금 섞고... 부엌에서 살금살금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밥에 두어 먹으려고 불려놨던 콩을 이번 떡에 넣기로 결심했다. 쌀만 먹으면 너무 탄수화물에 편향되는 것 같아서 콩이라도 넣어 죄책감을 조금 덜어낼 심산이었다.


따란~



원래는 간식으로 먹으려 했던 떡인데

김이 솔솔 나는 떡을 앞에 두니 남편도 나도 저녁밥이 되도록 먹어버렸다. 

난 이런 떡 원래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 오늘은 맛있지?


떡을 우물거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이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너도 이제 늙은 거지

    


나는 너에게 맛있는 떡을 쪄 주었는데 

너는 나에게 왜 이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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