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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 테러를 당했다

살의를 느꼈다

by 푸른밤

집에 먹을게 별로 없어서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갔다.

구입하고 싶은 재료들이 한식을 만들 때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한국마트로 갔다.

나름 사람들이 많이 붐비지 않을 시간을 고려해서 오전을 택했다.


차를 주차하고 마스크를 쓰려고 찾으니 오늘따라 천으로 된 마스크만 있고 KF94 필터 마스크가 보이질 않았다.

할 수 없지... 얼른 들어가서 필요한 것만 집어 빨리 나오자. 그랬다.

차 내부에 단돈 10센트, 25센트짜리 동전이라도 떨어져 있지 않게 샅샅이 잘 살피고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봤을 때 조금이라도 호기심을 갖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물건도 보이지 않도록 단속을 하고 내리는 것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100배 더 단단히 지켜야 할 '덕목' 이 되었다.

동전 몇 개 때문에, 혹은 안에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빈 종이 쇼핑백 때문에

자동차 앞 유리창, 옆 유리창은 깨진다. 백주 대낮, 멀쩡한 주차장에서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마트 입구로 걸어가 주머니에 넣어뒀던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쇼핑 카트를 골라잡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구입하려던 품목은 채 10가지가 되지 않았고 대략 물건들의 위치를 알고 있던 나는 허둥지둥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그때. 사건이 일어났다.

정면에서 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아저씨? 할아버지? 의 발걸음이 내게 편안한 속도가 아니란 걸 직감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저 사람이 내가 자기를 불편해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카트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데.

언제 그렇게 빨리 내 바로 앞으로 왔던지. 나와 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푸르딩딩한 색깔의 덴탈) 마스크를 벗고. 턱으로 마스크를 내리고

나를 향해서 엄청나게 세고 큰 재채기를 했다. 분명히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것을 피해자인 나는 안다.

재채기를 하고 나서 다시 마스크를 코로 끌어올리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나는 그 미친 자의 입과 코에서 나온 비말을 500만 개쯤 뒤집어썼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확신하는 것

1. 남자. 60-70세

2. 한국 사람

3. 일부러 그랬음




3월부터 시작되어 여태껏 이어지는 코로나 세상.

각자 자기가 살아온 세월만큼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대부분의 영역에서 바꿔놓았다.

한국은 아직 실행해보지도 않은 3단계 수위의 삶을 6개월이나 살다 보니 다들 정신들이 살짝 이상해졌다는 건

이해한다. 심신이 쇠약했던 사람들은 이런 세월 속에서 더 쇠약해졌을 수도 있겠지. 그래 그건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던가.

나는 종종 이곳 뉴스에서 보도되는 트럼피들이나 레드넥들 혹은 지독한 인종차별 주의자들만 조심하면 나에게 오늘 같은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이 자주 출몰할만한 동네, 그들이 애용할 것 같은 마트, 그들의 생김새, 그들의 억양, 그들이 선호하는

자동차 종류, 그런 것에 쫑긋 안테나를 세우고 조심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한인마트에서 미친 한국 할아버지에게 이런 테러를 당했다.

내가 실천해오던 조심, 주의, 안전, 대비, 방비 등등이란 얼마나 핵심에서 빗겨나간 것이냐.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에 나오는 좀비에게 물리면 아마도 이런 기분이겠지 싶은 일을 당했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혼비백산했다


.

알량해 알량해 알량해

오늘따라 알량한 천 마스크를 쓰고 마트에 들어간 나 자신이 후회되고 다른 한인마트도 있었는데 굳이 여기로 온 내가 싫고 혼란하고 심란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 미친 자에게 '살의'를 느꼈다. 진심. 짧았지만. 진심으로.

내 손으로 죽여버리겠다 이런 마음까지는 아니었을지라도 저런 사람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까지는

들었던 것 같다.

만약 내 자식에게 나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했다면 죽여 버리겠다 레벨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나 같은 일을 당한 사람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건지 여전히 심란하다.

14일 정도 찬찬히 나를 지켜보고 관리하고 점검할 생각을 하자니 정말 신경쇠약이 올 것만 같다.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할까.


메인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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