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사는 동안
교회에서 내가 앉는 자리는 피아노 옆 자리였거나 키보드를 앞에 둔 자리였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아, 뉴욕에 있는 교회에 다닐 때 잠깐은 빼고.
그 교회는 줄리어드 예비학교 혹은 줄리어드 재학생, 졸업생, 맨해튼 음악학교, 버클리 음대 출신들이 총망라해있던 초대형 교회라서 나 같은 사람이 피아노 근처에 갈 일이 없었다.
교회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성가대 솔리스트들에게 매달 지급하는 돈으로 막대한 금액을 사용하는 교회였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교회 '유치부' 예배 시간에 아가들을 위한 찬송과 노래들을 발로 밟아서 소리를 내는
'풍금'을 연주했다. 1980년대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교회였다. 일제시대 이야기 아니다.
교회에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오고, 키보드/신디사이저가 들어오고 등등의 변화를 거치면서
이전에 없었던 현상이 굳게 자리 잡았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 시간에 음악을 '깔아주는' 일이다.
음. 악. 을. 깔. 아. 준. 다라고 타이핑을 하는 내 손가락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왜 기도하는 시간에 음악을 '깔아' 줘야 하는 것인가.
어디에서 어쩌다가 이런 일이 시작되고 이젠 확고하게 굳어진 건지.
좋았던 싫었던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남들이 기도할 때 나도 저런 연주를 많이 해봤고 쟁쟁한 음악가들이 '깔아' 주는 연주를 들으며 나도 눈을 감고 기도하려 집중했던 시간이 숱하게 많다.
'깔아'주는 연주의 제공자와 수혜자. 두 가지 입장에 놓여봤던 나의 입장은 이렇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주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눈을 감고 손으로 모으고 드리는 기도와 같지는 않다
코드 진행이나 볼륨 조절을 통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흥분' 시킬 수 있다
기도시간의 기-승-전-결 이 너무 뻔하게 예측 가능하다
눈을 뜨고 있지 않았다면 보지 않았을 광경들을 봐야만 한다
썩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냥 연주를 듣고 있게 될 때가 많다(기도는 하지 않는다. 눈은 감았지만)
세션들끼리 코드 엉켰네라든가 우와~ 코드 진행 세련되네라든가 조바꿈 잘했네. 이런 생각 가득.
옆사람 뒷사람 웅웅 거리는 소리와 연주 소리가 얽히면서 그냥 무념무상
아무 소리도 안 나고 조용하면 오히려 기도하는 데에 더 좋겠다 라는 생각 한가득
몇 년 전.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새벽 예배 시간에 피아노를 쳤다.
설교 전에 찬송가 한 곡, 설교 끝난 후에 또 한 곡. 두 곡을 연주했다.
짧은 예배가 끝나면 이후 시간에는 각자 자유롭게 기도를 하는 시간.
나는 피아노 뚜껑을 덮고 교회 중간쯤 앉아서 내가 드리고 싶은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늙수그레한 여자 신도가 나에게 '컴플레인' 할 것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컴플레인이라고 말했다. 정말.
기도 시간에 왜 피아노를 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잔잔하게 음악을 '깔아' 줘야 기도를 할 것이 아니냐고 했다.
새벽, 조용한 시간. 각자 드리고픈 기도가 있겠지요?
저도 드리고 싶은 기도가 있겠지요? 그런데 ##님 기도하는데 도움되라고, 귀에 잔잔하게 좋은 노래 들으면서 기도하시라고 제가 계속 피아노 쳐야 해요?
백그라운드 뮤직 없으면 기도가 잘 안 나와요? 심지어 저 교회에서 피아노 치고 돈 받는 것도 아닌데요. 저를 고용한 듯이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요
라고 분명하고 차분하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몇 년 전의 내가 여태껏 한스럽고 후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