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떤 파스타를 가장 좋아하시는지. 나와 우리 가족들은 단연 오일 파스타를 일 순위로 꼽는다. 마늘과 진한 올리브 오일 그리고 적정량의 새우나 바지락이 스파게티 면에 엉겨져 있으면 맛있는 파스타로 취급한다. 물론 면과 다른 재료들이 사이좋게 잘 엉겨있어야 한다. 잘 엉겨있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 막상 만나보니 결이 달라 이른 이별을 준비하는 연인들처럼 재료들이 서로 얇게 떨어져 있으면 곤란하다.
어느덧 파스타 만드는 시간을 취미로 삼은 지 3년이 조금 넘어간다. 적지 않은 세월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였더라. 원래 요리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곤 계란 프라이 여러 개를 튀겨내는 것과 라면을 양껏 끓여내는 것 정도였다. 애호박 된장찌개도 끓여본 적은 있다. 특별한 이유로 딱 한 번 정도.
언젠가 대학교 친구들과 바다로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화창한 기대만이 가득한 겨울이었다. 그 당시 무슨 이유에선지 내가 애호박 된장찌개를 만들어야 했다. 아마 각자 요리솜씨를 뽐내기로 했었나 보다. 재료는 다 함께 구매했고 레시피는 손바닥만 한 인터넷에 즐비하니 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칼을 사용해 식재료를 다듬는 것이 문제였다. 칼질이라고는 작은 커터칼로 소묘용 연필을 깎아본 것이 전부였기에, 커다란 식칼로 애호박과 양파를 썰어내는 건 참 어색한 일이었다. 뭐랄까, 애호박이 마치 철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옅은 초록색을 띈 채 괴팍하게 두껍기만 한 철근.
그 기묘한 애호박을 철근 썰듯 힘겹게 다루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재료 손질이라는 고비를 넘기니 찌개는 수월하게 끓여졌고, 꽤나 그럴싸한 완성본을 얻을 수 있었다. 뭉툭하게 조각난 애호박도 다행히 잘 익어 철근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되었다. 친구들은 엉성했던 내 칼솜씨를 긍정적으로 비웃으며 애호박 된장찌개를 즐겁게 먹어주었다.
그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 봄이 찾아왔다. 맑고 불완전한 계절이었다. 결코 나쁜 봄은 아니었으나 복잡한 기운이 맴도는 시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어 여러 고민들이 가득했던 탓이다. 그즈음 나는 간절기에 어울리는 애틋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의 내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지금으로부터도 꽤 오래된 만남이지만 여전히 기분 좋은 온기가 남아있다.
나는 그때의 만남 속에서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땐가 불현듯 요리다운 요리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강하게 사로잡혔다. 아무런 경위도 없었다. 그저 그 과정 속에는 신선한 낭만이 가득할 것만 같았다. 아쉽게도 요리 솜씨는 여전히 형편없었기에, 상황을 타개할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적당히 공들이면 맛도 모양새도 보장되는 음식. 그런 것이 절실했다. 나는 머리를 굴려 생각들을 떠올리고 열심히 좇았다. 그런 생각의 뒤를 끈질기게 밟다가 오일 파스타를 떠올렸고, 그 순간의 아이디어를 잽싸게 낚아챘다. 느낌이 좋았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니 필요한 재료도 적당하고 조리법도 손쉬웠다. 애호박 된장찌개보다 편리한 요리라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접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기도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적격인 음식이었다.
그렇게 오일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 대접하기로 했다. 마늘과 진한 올리브 오일이 주가 되는 종류로, 알리오 올리오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대학교 친구들과 그랬듯이 우리는 함께 장을 보며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했다. 장을 보기 전부터 왠지 모를 자신감이 서서히 일었다.
친절하게 썰어져 있는 편마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스파게티니, 이탈리안 파슬리, 페퍼론치노를 장바구니에 순서대로 담았다. 중요한 재료들이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칵테일 새우도 샀다. 오리지널 레시피에 따르면 새우는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활용되는 식재료들이 생각보다 너무 변변찮아서 추가로 구입했다. 일종의 대비책인 셈이었다. 만약 지루한 맛으로 파스타가 완성된다고 해도, 그 옆에 잘 익은 새우가 함께 엉겨있다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새우는 어떤 식으로 조리하든 훌륭한 맛을 보장해 준다.
우리는 놓친 재료가 없는지 면밀히 살펴본 뒤, 가격표대로 결제를 했다. 값을 치른 식재들이 일회용 비닐가방에 가득 담겼다. 뚱뚱해진 비닐가방은 서로 사이좋게 나눠 들었다. 그러고는 마트 밖으로 나와 부엌을 보유한 공간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아까부터 존재했던 자신감은 어느샌가 긴장감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근거 없는 자신감 보다야 적당한 긴장감이 좋지. 나는 그런 식으로 마음을 달래며 걸었다.
다행히 파스타는 생각보다 좋은 방향으로 완성되었다. 기념비적인 나의 첫 파스타였다.
그때 어떤 모양의 그릇에 파스타를 담아냈는지, 포크와 스푼을 사용하여 능숙하게 식사 했는지, 식사가 끝난 뒤 설거지는 누가 해결했는지. 그런 것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을 끝자락 나뭇가지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메마른 잎 몇 장처럼, 그나마 몇 개의 기억만이 뒤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 기억은 대략 이런 식이다.
면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익었다. 오일의 양도 지나치지 않아 파스타에는 간소한 윤기가 돌았다. 아무래도 미숙한 경험 탓에 소스와 재료들이 사이좋게 엉겨 붙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적당히 맛있는 오일 파스타였다. 예상대로 잘 익은 새우는 충실히 제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는 그런 파스타를 돌돌 말아 각자의 입안에 가득 넣으며 복합적인 행복감을 느꼈다. 그릇을 비우는 동안 적절한 담소도 곁들였다. 장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한 시간이 넘는 조리시간을 통해 완성한 요리였지만, 그릇을 비워내는 일은 이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허탈감이 밀려오려 했지만 진한 신선함이 먼저 자리를 선점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어리숙한 칭찬과 만족스러움을 표현한 말들이 무작위로 뒤섞였다. 식탁의 색깔은 흰색이었고 그 위로는 따뜻한 기운이 골고루 퍼져있었다. 그건 계절의 온도와는 연관 없는 훈훈함이었다.
기억은 대략 이 부근에서 희미해진다. 찬 겨울에 뿌옇게 코팅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과 비슷한 느낌으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니 그럴법하다. 시간이 상당히 흐르게 되면 대부분의 기억들은 깡그리 소실된다. 이 기억도 언젠가는 티끌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겠지.
어쨌든 나는 운이 좋게도 파스타를 만들어 대접하는 행위에 대해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사람 간의 만남에 첫인상은 그다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외의 경험에 있어서는 다르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인상적인 경험은 그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식의 기대감을 연료 삼아 계속해서 파스타를 만들어왔다. 나를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그 덕에 여러 가지 순간들을 얻어 가슴에 새길 수 있었다. 그중에서는 더 각별한 것도 있었고 비교적 아쉬운 것도 있었다. 가끔은 격렬하게 돌아가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런 걸 해봤자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앞으로 더 맛있게 삶아낼 파스타에 대해서나 생각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