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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한갈색 Sep 16. 2021

모카, 다락원 체육공원, 자전거, 술, 꿈, 삶, 가을

 카누 스틱 아메리카노와 코코아 가루를 섞어 마시면 정말이지 그럴싸한 모카맛이 난다.


 앞으로 대략 2년 정도 다락원 체육공원이라는 곳에서 근무하게 됐다. 이름도 무척 귀여운 데다가 생김새도 고즈넉이 정돈된 숲 같은 곳이라 마음에 든다. 일본의 유쾌한 드라마나 만화에 등장하게 된다면 제법 잘 어울릴지도. 와르르 맨션, 나미야 잡화점, 다락원 체육공원. 이렇게 나열해보니 더욱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하고.


 유난히 덥고 지끈거리던 여름이 지나가긴 하나보다. 이제는 저녁 7시가 되면 해가 금세 줄어들고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래서 요즘은 밤마다 자전거를 탄다. 기분 좋은 밤바람을 공을 들여 누리기 위함이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 바람의 세기가 들쑥날쑥 해져 꽤 재밌다. 아무래도 정중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아닌지라 종종 과하다 싶을 때도 있긴 하지만. 하여튼. 맑아도 좋고 흐려도 좋은 9월의 계절은 매번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다. 적어도 근 3년 동안은 그랬던 것 같으니 올해도 비슷하겠지. 그러니 될 수 있으면 최선을 다 해 누리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래도 사람과 달리 떠나간 계절은 다시 돌아오긴 하니까, 너무 열과 성을 다할 필요는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뭐든 적당히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또 요즘은 매일 밤마다 술을 조금씩 마시고 잔다. 좋은 날 슬픈 날을 구분 지어 가려내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술기운이 생각보다 즐겁길래. 알싸한 기운이 몸속에서 맴돌 때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하면 왠지 평소보다 수월하게 풀리는 기분이 들어 좋다. 잘 안 하던 것을 즐기게 되는 상황에는 언제나 갑작스럽고 신선한 느낌이 있다. 웃기기도 하고. 역시 인생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술은 아빠가 정기적으로 사두시는 대용량 와인을 두어 잔씩 따라 마시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한 캔쯤 사와 마시기도 한다. 매번 밤늦게 마시는 탓에 되도록 안주는 먹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도 정말 가끔 입이 심심할 때면 집에 사둔 이탈리아 치즈를 적게 슬라이스 해서 안주로 삼는데, 그 조합이 참 좋다. 생각보다 맥주와도 잘 어울린다. 와인은 화이트가 좋고, 캔맥주는 클라우드가 좋다. 클라우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캔 디자인 때문이다. 전에는 몰랐는데 요즘 보니 참 예쁜 생김새를 지녔더라. 뭔가 고결한 느낌이 든다.


 오랜 고민 끝에 나름 공을 들여왔던 기존 작업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더욱 자신 있고 즐거운 일을 택했다. 좋은 친구들을 곁에 둔 덕분에 과감히 결정할 수 있었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더라. 혼자라는 것은 굉장히 재미없는 처지이기도 하고.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근래의 내 삶에는 기묘한 행복감 같은 것이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모든 일들이 복잡하게 꼬여서는 이리저리 넘어지며 한 껏 뒹굴었는데, 어느덧 가을을 맞이하게 되어 주변을 둘러보니 꽤나 많은 일들이 내 상황 따라 알맞게 놓여있음을 알았다. 물론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아 적절히 씁쓸하고 아리긴 하지만. 얼마 전 책에서 읽었는데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행운과 불운이 절반씩 섞여있는 게 삶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역시 잔뜩 낡아있는 말들은 이따금 친절한 귀감이 되어준다. 나는 세월의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그런 문장들에게 자주 감사함을 느낀다.


 곧 정겨운 우리 동네 하계를 떠나게 된다. 내 생일이 끼어있는 10월쯤에 집을 옮기기로 했다. 이사 전에 동네가 노랗게 물드는 모습을 한 번은 더 보고 갈 수 있으려나. 하계동은 길마다 크고 작은 나무가 많아 가을에 몇 배는 더 예뻐진다. 조금은 진부하게 과장을 보태어 말하면 가을마다 동네 곳곳 황금빛이 난다. 하여튼 머지않아 온 세상이 공평하게 노란색으로 물드는 풍경이 돌아온다. 나는 그런 식으로 누렇디 누렇고, 평소보다 더 기다란 하늘이 높게 떠있는 가을이 참 좋다. 가을 아침에 내리쬐는 햇볕은 다른 계절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근사한 편인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별개의 이야기지만, 그런 햇살이 내리치는 가을에 시작되는 연애에는 더욱 애틋한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나누기에 가장 좋은 절기는 아무래도 9월과 10월쯤이 아닐까. 아무래도 그전에는 너무 더울 것 같고, 그렇다고 그 후에는 또 너무 추울 것 같고 말이다. 뭐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계절이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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