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May 3. 2020
우리 한 번쯤 스쳐도 되지 않을까
저녁 찬거리 사들고 가는 길에
장바구니 사이로 삐죽이 나온 대파 한 단 보여도 좋고
젖은 머리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길이어도 좋고
아이들 손 잡고 동네 산책하는 길이나
영화관에 줄 서 있을 때
기차역 건너편 플랫폼이나
은행나무 늘어선 호수 옆 가로수길에서
시립 도서관 열람실에서
어디에서라도 좋으니
연락하여 약속잡기도 머쓱해진
과거 한 시절 함께 보낸 이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나
꾸며지지 않은 생활의 한 단면을 보이며
나도 당신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피하지 않는 눈짓으로 인사하고
그대 한 때의 젊음을 내가 기억해주겠노라고
단란한 일상을 응원하겠노라고
깊고 은은한 진심의 미소를 주고받는 것쯤은
우리, 괜찮지 않을까
불안과 혼돈과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로
진실을 마주할 수 없던 청춘이 걷히고
삶의 실체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한 번 보이고 싶네
당신과 나의 현재에 박수쳐주고 싶네
연약한 젊음이 함부로 뛰어들 수는 없었던 세상 앞에서
주저하며 한 줄을 이루고 서 있을 때 만났으니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낸 우리,
스스로 다독일 수 있게
한 번쯤은 스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