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끝.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기록, 일기.
by Om asatoma Jul 10. 2020
소설이 읽고 싶어 졌다. 시작은 없이 끝만 있는 관계가 남기는 것은 구체성에 대한 갈망이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들, 적나라한 대화들,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명확한 단어들 사이에 놓이고 싶었다. 음성이 느껴지지 않는 일방향의 시적 언어들 말고 내적 고백밖에 되지 않는 매일 듣는 내 목소리 말고 누구의 음성이 필요했다.
오랜만에 서가에 서서 현대소설의 책등을 보고 있으니 옛 애인을 만난 것처럼 한 때가 생각났다. 그래, 열렬히 읽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의 작가들은 알지 못하겠고 전경린 은희경 공지영 같은 이름을 찾고 있는 나를 봤다. 결국 멈춰서는 곳은 익숙한 이름 앞이었다. 에쿠니 가오리 앞에서 나에게 그런 때가 있었지, 하루키 앞에서 그토록 사랑을 나눈 때가 있었지.
조수석에 책들을 싣고 달리자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아이 하원 시간까지 여유의 삼십 분, 가방에서 일회용기에 덜어놓은 향수를 꺼내어 차 내부를 가득 채울 만큼 가장 깊은 곳에 뿌리고 코발트블루 빛깔의 타이트한 플리츠 새틴 스커트를 허벅다리까지 올리고는 귀 뒤로 꽂아놓은 머리칼이 제 맘대로 바람에 흩날리도록 창문을 내렸다. 폭우가 내릴 거라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는데 날씨마저 시시하고 그리고, 흐리게 끝나버렸다.
행암으로 가는 해변도로에 멈춰 섰다. 진해에서 살게 될 거라 생각하지도 못한 이십여 년 전 어느 겨울, 버스를 타고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어 노을 지던 저녁에 창원의 어느 대학 앞 버스 종점에서 올라탄 직행버스는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저녁께 낮게 깔리는 불빛에 반짝이던 겨울 바다와 그날의 내가 떠올랐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국가고시 준비 중에 대구로 학원을 다니며 만난 잘 알지는 못하는 어떤 언니와 여름밤 드라이브를 함께 했던 길이 바로 이 길이 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답답할 때 밤에 나와 그 길에 차를 세우고 바닷바람 맞으며 음악을 듣고 글을 썼던 곳이다. 한 번은 차에서 음악을 듣다가 배터리가 방전되어 출동기사를 부른 적이 있는데, 어느 젊은 기사가 달려와 조치를 취한 후 명함을 건네고 갔는데 다시 돌아와 이런 시간, 이런 길에 혼자 있으면 안 된다며 위로와 경고 사이의 어떤 말을 남기고 떠난 적도 있다. 그 바닷가에서 울기도 했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기도 했다. 그저 바라만 보다가 울음이 난 적이 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이 길에 대한 기억이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다.
다가오지도 못하고 떠나가지도 못하는 배들이 행암에서 진해만 쪽으로 띄엄띄엄 정박해 있었다. 나는 그 배들을 바라보는 게 그렇게 슬펐다. 볼 때마다 익숙함이 느껴졌다. 마치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나 같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에서 살피기만 하다가 결국은 한 번 만나는 일도 없이 어느 날 제 길을 떠나버리는 그들처럼, 나처럼. 오늘의 그처럼, 나처럼.
시동도 끄고 음악도 끈 채, 지난밤 폭우로 수면이 높아진 바다의 소리를 들었다. 새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서로를 살피는 것은 분명했는데 이쪽에서 먼저 다음은 그쪽에서 받아 물결에 바람결에 흐르는 척 조금 움직이기는 했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다시 제자리만 지키며 진해만을 떠날 날을 기다리는 배들처럼 우리는 이렇게 끝.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같은 궁금증을 일으키는 책 제목. 하루키의 책인데 제목을 처음 봤다. 하루키의 책이라 의심 없이 골랐고, 그의 책인데 아직 읽지 않은 것에 대한, 작가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골랐고, 겉표지 없는 양장본 커버의 느낌이 좋았고, 하루키의 다른 책들에 비해서 비교적 책의 상태가 괜찮아서 고른, 아니, 그냥 하루키라서 집어 든 책 한 권이 침대 옆에 놓여있다.
옛 남자를 만나서 한때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키를 읽는다. 그의 문체와 목소리가 문득 그리워서. 오늘은 소설이 읽고 싶은 날이다. 누구의 목소리가 필요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