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1) 프롤로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으며 쓰는 글

by Om asatoma

이건 뭐, 운명 같은 거다.

하필 그 시점에 만나게 되다니.


하루키의 글이라고 해서 전부 읽을만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내가 가보지 않은 외국의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하거나 책의 도입부에서부터 그 흐름을 타지 못하면 끝까지 읽어지지 않는 책들이 분명히 있었다. 어쩌다가 만난 하루키가 좋았을 뿐 모든 하루키가 좋았던 것은 아니니 그 날 서가에서 그 책을 집어 들 때만 해도 사실은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 책에 대한 이전의 정보가 전혀 없었고, 책을 펼쳐서 한두 문장을 읽었을 뿐이니 내용을 짐작할 수도 없었으며, 단지 문장의 호흡이 길지 않음과 특유의 담백함이 주저하지 않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내 안에서 떠오르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 그리고 남아있는 분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조차 아쉬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책과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총 19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3장까지 읽었을 뿐인데,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마지막 장 까지 읽고 난 후에 쓰는 글이 아니니 엄밀히 말하자면 독후감이라기보다는 독서 과정록 정도로 이름 붙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호흡이 긴 글을 한동안 쓰지 않았고, 직장생활을 하며 저녁때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어떤 속도로 진행이 될지 전혀 모르겠으나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작 3장만 읽고 떠오르는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 그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마구 밀려오고 있는데, 물때를 만난 거라고밖에 못하겠다.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명확한 뭔가가 잡힌 채로 간명한 글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지금 느껴지는 것들의 미세한 부분들은 잊힐 것 같다. 또는 이미 아무렇지 않게 되거나. 그냥 아무렇지 않게 되는 그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 어차피 누구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기회가 더 이상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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