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3)쓰쿠루에게 부러운 것, 그룹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으며 쓰는 글

by Om asatoma

아직도 첫 장이다.


첫 장에서 주인공에게 부러운 것이 둘 있었다. 나에게는 없는 둘. 첫째는 청소년기를 함께보낸 친구들 그룹이고, 둘째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세심히 들어주는 사라 같은 존재다. 쓰쿠루가 재탄생하게 된 계기 즉, 죽은 듯이 보낸 대학교 2학년 때의 사건에 대해서 사라에게 설명하는 내용으로 이 책의 첫 장은 구성된다.


쓰쿠루는 고등학생 때 봉사활동을 통해서 만나게 된 남학생 둘과 여학생 둘 총 다섯으로 이루어진 그룹에서 때로는 운동도 하고 때로는 끝없는 수다로 고민을 나누면서 완전체로 지내게 된다. 물론 이후에 이들로부터 이유 없는 일방적인 결별 통보를 받고 깊은 실의를 느끼게 되지만, 어쨌든 그 시기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 않았는가. 어디를 가든 함께 움직이며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룹. 함께하는 시간만큼 추억도 쌓여가는, 나의 한때를 기억해주는 누군가들.


나에게는 없다. 의 학창 시절을 기억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쩌다 좀 특이했던 아이로 한두 명쯤은 기억할지 몰라도 어떤 무리를 이루어 함께 나눈 시간 같은 것이 없다. 공부를 해야만 했고, 그리고, 중3 때의 일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은 생각한다.


쓰쿠루는 일방적인 결별 통보를 대학생이 된 이후에 받았지만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한 친구, 진경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3 때 같은 반이 된 아이다.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간 적도 있고, 내 기준에서는 꽤 친하게 지낸 친구다. 그 친구는 아파트에 살았고, 나는 그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고도 한 블록 더 지나야 하는 주택에 살았다.

친구의 집은 유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경은 플룻을 배우고 있었는데, 때로 학교 행사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마르고 키가 컸으며 커트머리였다.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갔다.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다. 소심하지는 않았지만 앞에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다.


나는 특별한 장기는 없었지만 아이들과 원만한 관계로 지지를 받았다. 글짓기나 미술, 웅변 같은 잡다한 대회에서 상을 자주 받아 학교에서는 유명한 편이었다. 중3 때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더 가깝게 지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때는 함께 했던 무리가 있었다. 진경을 포함해 네다섯쯤 함께 도시락을 먹고, 교정을 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였다.


그녀에게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나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말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진경에게 왜 그러냐고 묻지도 못했다. 당시 나는 반장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학급의 분위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뒷말을 한다거나 따돌린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냥 둘만 서로 피해 다니며 남은 학교 생활을 한 것 같다. 아이들도 둘의 관계를 알았기 때문에 둘이 있을만한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애써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이 정도로 서술할 수 있겠지만 뭐 그리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크게 괴로워했던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당시가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을 중3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사건이, 어느 날 그렇게 이유도 모르는 채 배척당한다는 기분이 드는 것, 바로 어제까지의 관계가 쉽게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지켜보는 눈들이 있어서, 그리고 반장으로서 어떤 책임감 때문에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듯이 보이려 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생이 된 이후 딱 한 번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버스 안에 있었고 그 애는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채 였는데, 그때라도 버스에서 내려 그 때 왜 그랬는지, 혹시 라도 내가 잘못했던 게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영화에서처럼 버스에서 내릴 용기는 없었다.


이건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것들 중 어떤 요소들이 어긋나서 만들어진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의 기억 속에 나는 그리고 그 일은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그 일이 내게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데 있어 무척 큰 두려움을 남긴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또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하게 했다.


쓰쿠루가 친구들로부터 이별통보를 받고 이유도 모른 채 헤어져야만 했던 이야기를 보자 나는 그렇게 나를 떠나간 사람들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때 왜 그랬었는지를 묻고 싶은, 잘잘못을 가린다거나 탓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관계에서 내가 어떤 작은 실수나 잘못이라도 하면 그렇게 거부당히고 말 거라는 두려움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에 무척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진경과의 일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떨치려 했는데 그역 시도 나를 두고 야반도주하듯 떠나려는 것을 그만 목격하고야 말았다.


중3 때의 일 이후로 처음으로 누군가와 친밀한 느낌을 가지려던 한 남자 친구였다. 동성에서 느껴지는 긴장관계가 아니었고 이성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관대함과 심리적인 경계를 느슨히 한 상태에서 그에게 말을 했다. 어찌하다 나는 중3 때의 이야기를 그에게 하게 되었고, 그 일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적당한 위로 같은 것을 그가 했을 것이다.


둘 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나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준비 중이었고 그는 의대 진학을 위해 휴학을 하고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다. 둘 다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여서 다른 인간관계들은 잠시 접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밥 먹는 시간에 만나 밥을 먹고 다시 공부하는 생활이 반복되자 자연스레 이전보다 친해졌고 대학 재학 중에 있었으나 유일한 인간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어제까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고 다시 공부하고 밥을 먹고 공부하다가 헤어진 다음날, 우연히 그의 자취방 앞을 지나다가 그가 이삿짐을 꾸려 떠나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아주 깊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남자친구쯤 되는 아이가 말도 없이 떠나는 장면이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서울로 간다했다. 햇빛이 쨍하고 하늘은 파랗던 가을날이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쓰쿠루가 친구들에게 이별을 통보받는 당시의 상황이 전개된다. 나는 나의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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