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와 엘레나

by Om asatoma

풍랑 주의보가 발령된 가을 다대포 맨발로 백사장을 걸으며 이제야 이렇게 펼쳐진 바다에 첫발을 담가보나 지나간 시간이 아까워 가을볕을 부지런히 쫓았다 물 빠지며 맨발에 닿은 모래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과 멀리 파도가 내게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과 넓은 뻘에 얕은 물결 일어 흡사 바다 위를 걷는 듯한 느낌과 내리쬐는 햇살이 서늘해진 갈마바람 잊도록 따사롭게 바닷물을 덥히고 이렇게 시공간을 잊어가는가 감상에 젖으며 낙조를 볼 기대에 차 있는데 여섯 시에 시작하는 아발론 왕국의 엘레나를 꼭 보아야 한다고 집으로 가자는 딸아이의 생떼에 못 이겨 돌아오는 차 안에서 멀리 지는 해를 바라보며 두고 온 다대포의 절정을 그리다 결국은 오열을 해버렸다 나에게 허락되는 것이 어찌 이리 아무것도 없냐고 해가 떠오는 것과 지는 것 어느 것도 가질 수 없냐고 시간이나 돈이나 노력이나 의지와도 관계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겠다는 것도 혼자 가지는 것도 아닌 수억 인구 속에 섞여 그저 바라보기만 하겠다는 것도 할 수 없냐고 갑작스러운 설움이 밀려왔다 뜨거운 물에 모래와 바닷바람 떨쳐내며 비밀스러운 결심 한 듯이 그 누구 만나고 싶을 때 홀로 쓰는 바디클렌저와 바디로션으로 온몸을 쓸어주고 잔향 오래가는 헤어제품으로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누구의 손 스윽 들어와 자유로울 수 있게 깊은 브이넥의 흐르는 듯한 니트를 입고 낮은 채도의 짙은 민트색 상의와 대비될 수 있는 짙은 핑크 브래지어만 한 채 한 손으로도 두 손으로도 풀기 힘든 버클의 청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몸의 구석구석 풀향기로 덮었다 바닷가 마을에 살면서 두고 온 바다가 그리 아쉬운가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 아니지 않은가 꿈만 꾸던 서해의 낙조를 예기치 않게 다대포에서 보았으니 두고 오기가 그리 힘들었는가 오롯이 자연을 마주할 시간 그것 하나면 되는데 가만히 맡는 비 향기와 풀소리 물결의 일렁임 은근한 햇살과 품을 파고드는 바람 느낌 그것이면 충분한데 내가 욕심내는 것이 그리 큰 것 같지 않은데 그것 하나도 허락되지 않음이 그렇게 서러웠다 아무에게 기대고 싶어서 그것이 앗아간 낙조에 대한 복수라도 되는 듯이 막 씻고 나온 여자 모든 준비를 마친 여자처럼 이 밤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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