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Nov 22. 2020
편도 다섯 시간 거리 시낭송대회에 나간 날
낯선 방배역 사람 없는 공항버스 정류장에 앉아
민얼굴에 어설픈 무대화장을 하며
포르쉐 벤츠 아우디 눈앞에서 실컷 구경했던 날
마스크 벗기가 무서워 바나나 하나로 식사를 대신하고
새 구두에 발톱이 아릿하다 결국은 멍들어 버린 날
시상식에서 호명되지 않은 이름 없는 사람으로 건물을 나설 때
그가 다가온 그날 밤.
대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시,
왜 그 시여야만 했는지 말하고 싶었다
여고 친구들이 H.O.T, G.O.D 편 나누어 좋아할 때
노찾사의 노래를 들었고
처음 가본 콘서트가 안치환의 콘서트였노라고
나이 마흔 되자 기성의 세대들이 만들어준 사회에서
누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
광화문의 촛불에서 느껴졌던 가슴 벅참과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부끄러움을
참회하듯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었다고,
운명처럼 다가온 시였노라고,
양재역 사거리 어느 건물 지하의
테이블 몇 없는 아무 술집에서라도
내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그 남자에게 말하고 싶었다
인상적인 시낭송이었다고 위로를 건네는
선한 인상의 그를 보며
그래, 누구의 가슴에 남을 낭송이라면 그걸로 됐다며
억지로 뒤돌아섰지만
그를 붙잡고
취한 듯이 때로는 울먹이며
그의 앞에 나를 벗겨놓고 싶었다
그날 밤 나의 거처는 그의 곁이어야
.....
사상의 거처
김남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 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