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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느 Dec 07. 2024

2024년, 올해의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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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의 best 출장, worst 출장


올해는 유독 출장이 많았다.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 총 6번의 해외 출장이 있었다. 대략 한달 반마다 한번씩 다녀온 셈이다. 그 중 워스트 출장과 베스트 출장을 꼽아보았다.


워스트 : 7월 라오스 출장


워스트였던 이유는 출장 자체보다 업무에 대한 불만이 커서였다. 귀찮기만 하고 보람도 별 의미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가장 관여하고 싶지 않은 업무였지만.. 이럴 때는 꼭 pick 당한다는 것이 직장생활의 애환과 슬픔이 아니겠는가.


출장 준비에 많은 시간을 갈아 넣으면서 개인 생활이 많이 무너졌는데, 도리어 ‘잘 좀 하라’는 식의 피드백을 하는 상사로 인해 가장 현타와 환멸을 많이 느꼈던 시기였다.


막상 현장에 가서는 예상대로 별로 힘든 일이 없었고 이슈도 딱히 없어서 출장 자체는 그렇게까지 힘들 게 없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 준비 과정은 절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소모적인 시간이었다.


베스트 : 3월 스위스 라운드테이블 출장


많은 출장이 있었지만 돌아보니 가장 첫번째 출장이 베스트였던 것 같다. 일단 스위스가 너무 예뻤다.. 이틀간 열리는 1.5 트랙 회의에 참여하는 거였는데, 참석자들이 회의 기간 서로간 대화와 교류에만 집중하게 한다는 취지로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산장 같은 호텔에 숙박하게 하고 삼시세끼 밥도 주고 회의도 하루 웬종일 그 호텔에서 한다. 일단 호텔에 한 번 체크인하면 끝날 때까지 못 나간다. 역설적이이게도 그게 바로 베스트 출장이 된 이유… 너무 편했다.


유럽 앤틱 스타일 호텔도 너무 예뻤고, 방마다 전망 무슨 일… 하루종일 방에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비록 실상은 하루종일 회의가 있어서 방에는 정작 얼마 있지 못 했다는 게 함정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잠깐잠깐 보는 풍경만 해도 이거 실화냐 싶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새 팀에 온 지 약 3주만에 가게 된 출장이라 암것도 모른 채 다짜고짜 가게 되었지만 덕분에 단기 속성으로 가장 많은 것을 공부한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절박한 필요가 있을 때 가장 많이 발전한다. 힘들긴 했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도 있고, 잘 해보고 싶은 의욕도 넘쳤던 허니문 기간이라서 돌아보니 베스트 출장으로 기억에 남는다.



2. 올해의 책


5년 이상 습관처럼 책을 읽어왔기에 이제 특별히 힘들여 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의 일부인 책 읽기. 2024년 올해의 책 1권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를 택하겠다.


본인의 평생의 우상이자 사랑하는 형을 20대 젊은 나이에 잃은 슬픔을, 승승장구하던 화려한 커리어를 내려놓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예술 작품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서서히 극복해가는 서사를 뻔하지 않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풀어가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뉴요커’ 기자 출신 답게 문장이 아름다워서 문학으로서의 완성도도 높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통해서 얻은 저자의 통찰은 이 책을 읽은 7월 이래 지금도 여전히 인상깊게 남아있다. 시스티나 대성당의 그 유명한 천장화를 완성하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제자들과 함께 매일매일 타일 한 조각 분량의 그날의 하루 과업을 달성하는 데 매진했다고 한다. 그런 날들이 수개월, 수년이 모여 마침내 우리가 익히 아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가 완성되었다. 위대한 과업은 결국 오늘 하루의 타일 한 조각을 성실히 이루어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때로 나는 욕심이 많아서 꽤나 대단한, 어느 정도 인정 받을 만한 성취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하지만 내가 오늘 하루 과연 그럴만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오늘 하루도 성실히 살아내지 못 하면서 언젠가 대단한 걸 이루길 꿈꾸는 것은 망상이지 싶다.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도 저렇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았는데.. 나태해질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책 속 장면이다.


관찰해보건대 요즘 시대감성은 억텐, 억지로 노력하기, ‘척하기’ 이런 것들을 싫어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 대단한 사람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 한 개인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의 최선의 노력을 해서 작은 성취나 변화나마 이뤄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에세이는 그런 요즘 시대감성에 잘 들어맞는 책인 것 같다.


한 권만 꼽으면 사실 너무 아쉽다. 인생책 반열에 들어갈 만하다 싶은 한 권을 더 고르자면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사회적 주제의 소설을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 필요한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만 읽고 나면 필연적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디의 우산, 체공녀 강주룡 같은 소설이다)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면 문학이 아닌 아싸리 사회서적으로 접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올해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읽고 나서는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미안했을 일이다’ 라는 감상이다. 인생책으로까지 꼽은 이유는, 필연적으로 무거울 수밖에 없는 소재와 주제를 독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쓴 너무나 세련된 소설적 작법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늘 글의 주제는 독서 감상평이 아닌 ‘올해의 ㅇㅇ’이니까.. 이쯤에서 넘어가본다.


3. 올해의 공연


이건 올해 몇몇 회고글에서 이미 마르고 닳도록 풀어냈듯이… 나의 지독한 무기력마저 한방에 날려버린 전민철 솔로르 주연의 라 바야데르다!


(전민철 덕분에) 공연 퀄리티도 미쳤고, 나에게 준 영향력 면에서 가히 독보적 1등이다.


공연 자체의 퀄리티로 하나 더 꼽자면 빈 필하모닉 내한 공연. 공연도 물론 좋았는데, 개인적으로 꽤나 긍정적인 영향력이 있었다.


아직 주니어 커리어일 뿐이지만, 주니어 때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은 다 이뤘기에, ‘이제는 뭘 꿈꿔야 하지?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없다..’ 가 고민이었던 차에, 이 공연을 보고 다시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꿈을 꾸게 되었다. 기대했던 바는 전혀 아니었는데, 때로는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영감을 얻게 된다.


4. 올해의 소비


소비 회고글에서도 이미 한 번 적긴 했는데, 다시 돌이켜보니 신형 아이패드 프로다. 올해 제일 잘 산 템. 비록 비싼 콘텐츠 플레이어로 쓰고 있긴 하지만, 그것만 해도 만족도가 높고 (흑백요리사 너무 잘 봤다구..) 가볍다는 것도 심적 부담을 상당히 낮춰줘서 여기저기 들고 다니기 좋다. (그치만 생각해보니 최근에는 별로 들고 다니지 않았네..?) 활용도 높이기 위해 더 열심히 써보겠다.


5. 올해의 여행


여행은 지난 2년반 동안 주구장창 다녔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서 여행을 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휴가를 쓰기도 자유롭지 않고,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여름 휴가로 일본 여행은 다녀왔다. 영국에 가족들 놀러왔을 때를 제외한다면, 가족들이 다 함께 떠나는 여행은 거의.. 17년만인 것 같다. 특히 아빠는 일본을 처음 가봤다고 한다..! (의식하지 못 하고 있었다..)

여름 휴가인데 한국에만 있기엔 좀 길고 멀리 가기엔 짧은 5일 휴가라 그냥 가볍게 갈 수 있는 후쿠오카를 엄마, 동생이랑 우리 맘대로 정한건데 (여행지 선택에 있어 아빠는 늘 어디든 좋다는 입장이며 발언권이 없다 ㅎㅎ), 아빠가 다녀와서 ‘일본을 처음 가봤는데 역시 일본이 어쩌니 저쩌니 해도 저력이 있는 나라는 맞는 거 같다, 한 번도 일본에 가봐야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막상 가보니 인상 깊었다.’ 라고 해서 나는 그 감상이 인상 깊었다… 아빠가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 못 했었다! 그냥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니까 그 자체로 좋아하실 거라고만 생각했지, 일본 여행지 자체를 인상 깊어하실 줄 몰랐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 뒤로 딱히 더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다음번에 집에 가면 한 번 물어봐야지.


6. 올해의 맛집


올해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영국은 진짜 음식이 그렇게 맛없었어?’ 였다.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언제나 ’어!!!!‘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첨엔 모든 게 맛 없어서 3kg가 빠졌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걸 돈 주고 사먹는다고?’ 했던 ‘프레타망제 (=우리나라 김밥천국 같은 영국의 국민 샌드위치 체인이다)‘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별로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먹는 것에서는 즐거움을 찾지 않으면 될 일이다.


‘첨엔 이걸 왜 먹어 했던 것도, 나중엔 미각이 마비되어서, 그냥 씹어서 삼킬 수만 있으면 다 먹게 되더라 ㅎㅎ’ 라고 농담처럼 진담을 전했다.


그렇게 살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오니 가야 할 맛집도, 먹어봐야 할 맛있다는 것도 너무 많더라.


본래 맛집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저기 맛있다는 곳을 열심히 찾아다녀 봤는데, 베스트 하나를 선택하라면 흑백요리사 ’이모카세‘로 유명해진 분의 경동시장 국수집 ’안동집‘ 이다.


맛있기도 한 데다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해주셨던 안동 칼국수 맛이랑 똑같아서 더 좋았다. (친가는 부산이지만 할머니는 안동 분이셨다.) 어릴 때 먹어본 음식이 이렇게 무섭구나 싶었다.


여름방학 때 부산 친가에 가면 할머니가 집에서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하고 1m쯤 되는 밀대로 일일이 밀어서 손칼국수로 해주셨는데, 나이가 더 드시고는 힘에 부쳐서 못 하셔서 초등학생 때 이후로는 먹어본 적이 없다. 잊고 있었던 그 맛을 다시 찾아준 집이었다.


언제고 다시 갈 의향이 있는데 (심지어 경동시장은 지금 살고 있는 왕십리에서 가깝다!) 문제는 웨이팅이 어마어마하다는 거..


월요일 하루 휴무인 김에, 평일 가장 애매한 시간(4시) 을 골라서 갔는데도 40분 정도 웨이팅을 했다. 그 전에 부모님이 다녀오셨는데 금요일 점심시간에 갔더니 1시간 반 정도 웨이팅을 했다고 한다…


주말엔 어떨지 상상도 안 된다. 타이밍을 잘 노려서 가야 할 것 같다.



키워드별로 올해를 회고해보는 것도 색다르고 재밌다. 돌아보니 새로운 일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짬짬이 시간을 많이 보낸 한 해였던 것 같다.


아직 내년 계획이나 각오, 다짐 같은 것까지는 생각해 볼 엄두가 안 나긴 한다.


12월 말로 점점 더 다가가면 좀 생각이 나려나.


남은 시간 동안 계속 한 해를 잘 돌아보며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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