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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Mar 25. 2018

뭐든 갈아엎기는 힘드니 조금씩 바꾸기

축구에서 배운 가장 큰 가치

아침에 눈을 뜨면 축구 소식부터 확인하는 게 오래된 습관이다. 몸으로 직접 뛰는 축구에는 재능이 없지만 축구 관련 정보수집을 좋아한다.  다른 관심사인 영화, 문학, 음악은 내 직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에 완전하게 즐기기가 쉽지 않다. 축구는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그 어떤 당위성도 가지지 않고 맘 편하게 즐기면 된다. 


축구가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말하는 이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축구는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코트디부아르와 아르메니아는 축구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나라고, 각 잡고 외우라고 했으면 절대 못 외웠을 각 나라의 수도와 사용하는 언어, 국기를 자연스럽게 외웠다. 팀들 간의 원정경기 거리를 알아보다 각 나라와 도시의 위치를, 좋아하는 선수가 이중국적이라 찾아보다 그 나라의 식민지 역사를 알게 됐다. 내가 아는 가장 재밌는 세계지리 교과서는 축구다.


절대강자 같은 팀이 몰락하고, 어떤 선수의 이적이 팀 전체에 거대한 영향을 주고, 적은 예산을 가진 팀이 몇 배의 돈을 쓰는 구단을 이기는 등 다양한 변수들을 보면 삶의 요약 같다. 축구팀을 응원하고 있으면 나 자신을 응원하듯 몰입하게 된다. 준비 잘한 경기를 지면 속상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내 삶에서도 잘하나 못하나 응원하는 이가 있으며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한 레스터시티. 이와 같은 예상 못한 결과가 축구의 가장 큰 재미 아닐까.


내가 응원하는 팀은 이탈리아 밀라노가 연고지인 '인터밀란'이다. 무리뉴 감독과 함께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리그컵까지 세 개의 우승컵을 들며 트레블을 이뤘지만 그 후로 계속 하락세다. 유럽 정상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 무리뉴 감독의 이탈과 세대교체 실패가 큰 이유다. 답답한 경기력을 볼 때면 '팀을 갈아엎고 싶다'라고 감정적으로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밀란은 '갈아 엎어지기' 시작한다. 팀의 자금상황과 감독 교체 등 여러 이유로 팀의 색이 바뀌게 된다. 우승의 주역들은 어느새 노장이 되어서 팀을 떠나거나 은퇴했고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졌다. 우승을 비롯한 많은 경험으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줄 노장들이 떠나고, 새로 합류한 선수들이 호흡을 맞추기까지 시간이 걸리기에 과도기에 접어들게 됐다. 애석하게도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은 용서되지 않기에, 많은 감독의 경질과 잦은 선수단의 변화가 생겼다. 


트레블 당시의 인터밀란


축구가 아니라 삶에서도 답답할 때면 '갈아엎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에 입학해서 2년간 다닌 학교를 그만두고 수능을 다시 본 이유이기도 하다. 아예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수습할 엄두가 안 나서 아예 판을 다시 짠 거다. 이때도 많이 느꼈다. 단 한 번의 시험에 내 앞날을 걸고, 실패할 경우에 돌아갈 곳도 없고, 부모님의 반대도 극심했다. '갈아엎는' 식의 도전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결과는 만족스러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운도 필요했고, 무엇보다 아예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심적부담이 큰 도박이었다.


지금도 갈아엎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일하다가 잘 안 풀리면 프로젝트 자체를 다시 하고 싶다. 만약 진짜 다시 시작한다고 하면 연관된 모든 팀원이 당황할 거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해온 부분에서 작은 부분부터 고쳐나간다. 사적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브런치에 글을 쓸 때마다 다시 쓰고 싶지만 완성 자체가 중요하기에 퇴고로 어떻게든 수습한다. 


이번 시즌 인터밀란은 시즌 시작에 앞서 대대적인 변화를 하기보다 리그에서 검증된 스팔레티 감독을 데려오고, 취약한 포지션을 보강하고 기존 선수들의 호흡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시즌 전반기에는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혔다. 아쉽게도 지금은 우승후보에서 멀어졌지만 팬 입장에서는 희망을 본 시즌이다.


나의 시즌도 시작됐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고, 퇴근 후에는 글을 쓴다. 그 주기를 축구처럼 한 시즌으로 친다면 지금 나의 순위는 어느 정도일까. 분명한 건 시즌이 시작된 이상 유일한 목표는 충실하게 그 시즌을 마치는 거다. 지고 있는 경기라고 해서 아예 다시 시작할 순 없다. 남은 시간 동안 전술을 수정하고, 더 많이 뛰고, 끝난 후에 보완해서 다음 경기를 잘하는 게 최선이다. 한 경기 한 경기가 모여서 38경기가 한 시즌의 순위를 결정 짓는 것처럼 매 경기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다보면 결국 우승의 날도 오지 않을까.


인터밀란도 결국 다시 우승하는 날이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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