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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Sep 22. 2020

예능프로가 고전문학보다 더 필요한 순간

영감의 원천, 예능프로

주말 오전이 되면 한 주 동안 했던 예능프로들을 몰아서 본다. 짧게 보더라도 거의 다 챙겨보려 한다. 지인들이 안부를 물으면 어떤 예능을 재밌게 봤는지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는 항상 변명처럼 하는 말이 있다. 


"트렌드를 파악한다고 생각하고 봐요."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예능프로 감상을 썩 생산적으로 안 본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예능프로그램을 본 시간이 책, 영화를 본 시간보다 긴 날도 있다. 그럼에도 나의 인풋에 대해 말할 때 예능프로그램을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어떻게든 쥐어짜서, 있어 보이는 책과 영화 이름을 대기도 한다. 


내가 예능을 그렇게 열심히 찾아서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웃고 싶어서다. 가장 빠르게 웃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너무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웃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예능프로그램을 한 시간 동안 보면서 웃은 횟수가 한 주 동안 웃은 횟수보다 많다. 퇴근하고 예능프로그램 하나 보고 잠들 때가 많은데, 그것 또한 좋은 여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결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웃음은 생각보다 값지니까.


고전문학을 읽는 것보다 예능프로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줄 때도 있다. 어차피 일상에서 영감은 어디서 올지 모르는 거고 닥치는 대로 흡수하는 게 중요하다. 오히려 의무감에 봤던 책이나 영화보다, 내내 웃으면서 본 예능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메모할 때가 많다.


내가 흡수하는 인풋들에 대해서 점수를 매기고 싶지 않다. 내가 삶에서 느끼는 모든 것이 동등한 무게를 가진 거라고 여기고 싶다. 영화든 책이든 예능이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는 사활을 걸고 노력했다는 걸 안다. 썩 재밌지 않은 예능프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재미가 덜하다고, 그 프로그램을 위해 노력한 이들을 함부로 평가절하할 순 없다. 웃음을 주는 건 그 어떤 작업보다도 난이도가 높다. 나의 꿈은 늘 웃긴 사람이 되는 건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탱자탱자 집에서 노는 시간도 생산적이라고 믿고 싶어서다. 생산성이라는 말을 그만 쓰고 싶은데, 이것도 병 같다. 만약에 생산성의 기준이 영감을 얻는 거라면, 내게 예능프로는 책과 영화와 다를 게 없다. 적어도 내가 유희로서 즐기는 것들에 생산성을 들이밀면 안 될 것 같다. 예능 덕분에 웃고 영감까지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조차도 의무감에 읽은 고전문학이 아니라 내내 웃으면서 본 예능프로에서 시작된 거니까. 


웃을 일이 별로 없지만 오늘도 예능프로를 보며 웃었다. 책이나 영화 많이 보는 척 그만하고 앞으로는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내 진짜 취미는 예능프로를 보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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