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체실 비치에서>
최선을 상상하다 최악을 만날 때
<체실 비치에서>는 기대할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좋은 작품을 써온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 원작이고, 그가 직접 각본에까지 참여했다. 주연배우인 시얼샤 로넌은 존재감만으로도 영화 선택의 기준이 되는 좋은 배우다. 게다가 영화 제목으로 추측컨데 아름다운 배경에서 영화가 전개될 거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체실 비치에서>는 기대가 무색할 만큼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이 영화가 무책임하다는 거다. 영화 속 인물들은 최선을 상상하다 최악을 만나고, 그 이후의 과정은 급하게 마무리된다. 마음 아파하는 인물에 대한 위로를 관객에게 떠넘긴 느낌이다.
모래나 바다에 묻을 수 없는 것들
막 결혼하고 해변의 호텔로 신혼여행 온 남녀. 이들은 첫 섹스를 앞두고 긴장한다. 두 사람의 긴장의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정보와 전사들이 플래시백으로 삽입된다. 꽤 많은 정보들이 관객들에게 입력되었을 때쯤, 이 영화는 중심이 되는 큰 갈등을 하나 던져준다. 그리고 그 갈등 앞에서 인물들은 혼란을 겪는다.
두 사람은 해변을 걷는다. 영화에 대해 정보가 없던 초반에 걷고,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 뒤에 걷는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을 걷지만 짧은 시간 사이에 이들 각자가 품은 마음은 꽤 큰 차이를 가지게 된다. 발에 밟히는 수많은 모래 중 하나로, 눈앞에 보이는 바다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묻어두기에는 무거운 마음.
나와는 불가능한 사랑을 이뤄낸 널 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아니, 이건 불가항력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그걸 채울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을 양쪽 모두 가지고 가는 건 쉽지 않다. 무수히 많은 관계가 그런 식으로 끝난다. 이런 경험은 자책과 질투로 이어지기 쉽다. 왜 나는 안 되는가, 왜 다른 이들은 되는데 나는 안 되는가.
<체실 비치에서>는 제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감정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 영화다. 사랑했지만 내가 채울 수 없는 부분 때문에 떠나보낸 이가 떠오른다. 난 그 사람의 안부를 알고 싶지 않다. 그저 완벽하게 잊고 싶다. '잊고 싶다'라는 적극적 감정조차 필요 없을 만큼, 그저 완전하게 삶에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그 사람의 소식을 듣고, 내가 아닌 누군가 때문에 행복한 모습 앞에서 쿨한 척하고 싶지 않다.
에드워드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에드워드에게 <라라랜드>의 세바스찬이 아니라 <이터널선샤인>의 조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너무 행복해서 평생 품고 싶은 기억일지라도, 그 일부의 행복 때문에 안고 갈 추억 전체는 결국 아픔으로 물들었을 테니 잊게 해주고 싶다. 잊어야 전진할 수 있을 테니까.
보란 듯이 잘 살아야 해, 에드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