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영주>
성숙한 아이를 바라볼 때
영주는 강한 아이다. 아니, '강해야만' 하는 아이다. 영주가 14살일 때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자신에게 남은 건 10살짜리 동생뿐이다. 영주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다. 동생의 부모 역할을 잘 해내는 것. 좀 더 크게 보자면 생존하는 것.
이제 스무 살을 눈앞에 둔 영주는 증명받고 싶어 한다. 살림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동생을 챙기고, 동생과 치킨을 먹으면서 묻는다. 누나가 이렇게 챙겨주니까 좋지? 누나가 나중에 네 대학도 보내줄 거고... 사춘기인 동생은 답이 없다.
성인이 되기까지 반드시 필요한 조건 중 하나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은 평생을 버틸 자양분이 되어준다. 영주에겐 그런 사랑이 부재하고, 어쩔 수 없이 짊어지게 된 책임감 앞에서 동생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누나 멋있지? 이런 누나가 어딨어! 책임감보단 인정이 더 필요할 열아홉 살, 영주.
불안한 행복을 지켜보는 일
어린 두 남매의 삶은 먼발치에서 봐도 위태로워 보인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영주에게 동생의 탈선 소식이 들려온다. 버티던 영주도 무너진다. 무너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영주는 더 극한으로 간다. 부모님을 죽은 이에게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복수의 마음을 품은 채 영주는 부모님을 죽은 이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전혀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진다. 그들이 너무 따뜻하게 영주를 보듬어준다는 거다. 속물처럼 보이는 고모로부터 느끼지 못한, 아무리 챙겨줘도 퉁명한 동생에게서 볼 수 없던 따뜻함을 본 거다.
품고 가기엔, 머금은 온기가 아프다
불행과 상처가 예정된 인물, 그 인물의 행복을 바라볼 때 힘겹다. 웃고 있는 저 행복이 곧 깨질 것을 알기에 두렵다.
영화가 끝나도 영주가 마음 안에서 성장하는 느낌이다. 아무리 어른인 척, 강한 척 해도 약하고 사랑받고 싶은 내면을 금방 들켜버리는 아이. 아무리 밝게 말해도 그 말 뒤에 그늘이 있는 아이. 과거를 잊으려고 달리다 보면 미래 앞에서도 막혀서 주저앉고 싶어 지는 아이. 고통과 아픔이 압축되어서 만들어진 성숙은 한없이 연약하다는 걸 깨달은 아이.
온기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온기가 떠나간 자리는 티가 나니까. 온기가 머물렀던 자리가 마음이라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질 테니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행복에 대한 가능성을 닫는 건 미련한 짓일까.
영원하지도 못할 따뜻함에 데어서 잊을 수도 없게 만들 거면 그냥 다가오지 말아 주세요.
영주는 빛나는 구슬
영주를 보며 김기택 시인의 시 '유리에게'가 떠올랐다.
너는 투명하지만 반들반들 빛이 나지만
그건 날카로운 끝을 가리는 보호색일 뿐
언제고 깨질 것 같은 너를 보면
약하다는 것이 강하다는 것보다 더 두렵다
'빛나는 구슬'이라는 뜻을 가진 영주. 유리구슬이 아니라 깨지지 않는 구슬이기를. 단단하고 따뜻하게 빛날 수 있기를. 너의 위태로움에 대한 나의 걱정이 기우로 끝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