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부탁 하나만 들어줘>
믿고 보는 폴 페이그의 코미디
폴 페이그는 코미디에 능한 감독이다. 크리스티 위그가 각본과 주연으로 참여한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부터 리메이크작인 '고스트 버스터즈'까지 폴 페이그가 연출한 코미디는 웃음이 필요할 때 믿고 볼 수 있는 감독이다. 특히 멜리사 맥카시가 주연으로 나온 '스파이'는 그의 최고작이다. 기존 스파이물을 비틀어서 위트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폴 페이그는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코미디를 잘 만드는 감독이다. 그렇기에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 대한 기대도 비슷했다. 어떤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얼마나 웃긴 코미디가 될까.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스릴러를 표방한다고 하는데, 코미디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릴러를 설정으로 가져온 것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이끄는 힘은 스릴보단 위트니까.
캐릭터의 매력으로 전진하는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가장 큰 미덕은 캐릭터에 있다. 이전 작품들보다 캐릭터들의 밀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을 칭찬하고 싶은 이유는 전적으로 배우들 덕분이다. 배우들의 매력이 넘치는 영화라, 배우들만 봐도 러닝타임 내내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피치 퍼펙트' 시리즈의 안나 켄드릭은 폴 페이그의 작품들이 선호해 온 이미지와 딱 맞는다. 늘 에너지가 넘치는 캐릭터지만 한편으로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인데, 그 미묘한 간극을 잘 포착해서 표현해냈다. 유머의 타이밍을 너무 잘 아는 배우이기도 하고.
안나 켄드릭이 코미디 장르를 잘 소화하는 건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가장 큰 반전은 블레이크 라이블리다.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주로 수트를 입고 등장하는데,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씬 자체를 분위기로 장악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처음 느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내내 떠오르는 명대사를 외친 것도 그녀이고.
두 사람과 함께 호흡을 맞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헨리 골딩도 인상적이었다. 최고의 씬스틸러라면 '인턴'에 나왔던 앤드류 라넬스일 거다.
방점을 어디에 찍을까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성장영화다. 캐릭터가 러닝타임 동안 성장하고, 관객은 그 성장을 지지하게 된다. 싱글맘이자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하던 주인공이 특정 사건을 계기로 성숙해지고 새로운 미래를 발견하는 과정은 내내 흥미롭다.
영화 이름을 처음 읽었을 때 띄어쓰기를 제대로 안 보고 '부탁 하나 만들어줘'로 읽었다. 누군가의 부탁을 계기로 자신의 삶의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냈기에, 이렇게 띄어쓰기를 해도 꽤 그럴듯한 제목이라고 느꼈다. 이타적인 배려의 선택이 자신의 삶을 확장시키는 좋은 예가 아닐까.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생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