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그린 북>
예상을 빗나간 영화의 장르
영화에 대한 정보라고는 출연배우뿐이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아르곤 역할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무시무시한 연기를 보여줬던 비고 모텐슨이 주연이다. 비고 모텐슨과 투톱으로 호흡을 맞춘 배우는 '문라이트'로 아카데미를 비롯해 그 해 거의 모든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마허샬라 알리다. 두 배우 모두 갱스터에 가까운 거친 역할이 인상적이었고, 당연히 두 배우가 출연한다면 누아르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감독을 보니 '피터 패럴리'다. 동생인 바비 패럴리와 함께 형제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짐 캐리 주연의 '덤 앤 더머' 카메론 디아즈 주연의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기네스 펠트로와 잭 블랙이 호흡을 맞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를 연출했다. 코미디가 기반인 사람이고, 특히 로맨틱 코미디에서 두각을 나타낸 감독이 과연 비고 모텐슨과 마허샬라 알리와 함께 어떤 작품을 만들지 좀처럼 예상이 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린 북'은 괜찮은 완성도를 가진 휴먼 드라마다. 특히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보기 좋은, 따뜻한 영화다.
이탈리아 이민자와 흑인의 미국 남부 여행
비고 모텐슨이 연기한 '토니'는 대가족이 함께 사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로, 나이트클럽 등을 전전하며 일하고 있다. 마허샬라 알리가 연기한 '셜리'는 천재 피아니스트로 남부 투어를 함께 할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로 토니를 고용한다. 셜리는 흑인이고, 토니는 평소에 흑인과 겸상조차 안 하지만 좋은 조건 때문에 일을 승낙한다.
영화의 배경은 60년대 미국이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하고, 특히 두 사람이 동행하는 남부 쪽은 더욱 심할 때다. 북부에서 편하게 연주하며 살 수 있음에도 셜리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투어를 강행한다. 영화의 제목인 '그린북'은 흑인들을 위한 여행안내서로, 흑인들이 출입 가능한 식당과 숙소들이 적혀있다.
토니는 자신이었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차별을 셜리 옆에서 직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토니가 이민자 출신인 것도 중요하다. 과연 미국 남부 출신의 백인이었다면 셜리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토니도 셜리와 같은 이방인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서, 결핍을 채워줄 친구가 있다면
영화 '그린북'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면서 성장하는 두 남자의 로드무비다. 영화의 메시지와 소재를 생각하면 무겁게 진행할 수도 있었음에도, 감독이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러닝타임 내내 위트 있게 진행한 게 좋은 선택이 됐다. 무엇보다도 서로 무척이나 다른 토니, 셜리 두 캐릭터를 연기한 두 배우의 매력이 큰 작품이다.
'그린 북'의 배경인 과거뿐 아니라 현시대에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차별이 완전하게 사라질 거라고 낙관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서 내 힘으로 결코 채울 수 없는 결핍을 채울 친구가 하나라도 있다면, 세상은 좀 더 견딜만해질 거다. 마치 토니와 셜리처럼.
차별의 차가운 현실과 따뜻한 연대가 적절히 배합된 사려 깊은 '그린 북',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