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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31. 2018

청춘이 음악이라면, 그 배경은 늘 여름

브런치 무비 패스 <레토>


음악보다 정서에 집중하는 영화


감독의 이전 작품이 가진 성향 때문에 가택에 구금 중, 주연배우가 한국 배우 유태오, 러시아의 전설적인 뮤지션 빅토르 최에 대한 영화, 칸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작품. '레토'를 둘러싼 여러 정보들로 추측해 보자면 사회에 저항하는 뮤지션에 대한 전기영화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영화와 빅토르 최의 음악 모두 쉽게 접하기 힘들기에, 일반적인 음악영화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레토'는 기분 좋게 예상을 빗나가는 영화다. 별 기대를 안 했을 때, 그 기대를 뛰어넘는 영화를 만나는 것만큼 좋은 영화적인 경험도 없다. 뻔한 음악영화도, 많이 봐온 전기영화도 아니었다. '레토'는 정서에 집중하는 영화다. 시대의 분위기와 인물의 정서를 담는 데 있어서 음악이 좋은 운반수단일 뿐. 



보수적인 러시아 사회와 MTV 뮤비의 충돌


'레토'는 흑백영화다. 가사를 검열받고, 클럽에서 음악을 들을 때도 박수 외에 어떤 동작도 허용되지 않는 사회를 표현하기 위한 설정일 거다. 창작조차 흑백논리로 체제에 순응적인가 아닌가로 판단하는 세상에서, 서구에서 들어온 음악들은 당연히 불순하게 보인다. 시대가 억압할수록 청춘들은 더 치열하게 저항하고, 그 저항의 결과물 중 하나가 음악이다. 



'레토'의 전반적인 무드는 정적이다. 다소 암울해 보이는 시대 속에서 몇몇 곡들이 뮤지컬 시퀀스처럼 펼쳐지고, 이때의 연출은 MTV의 초창기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킨다. 애니메이션 효과가 넘쳐나고, 빅토르 최의 무리들과 함께 있던 군중들도 어느새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때의 쾌감이 '레토'가 음악영화로서 가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꽤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판타지에 해당하는 뮤지컬 시퀀스가 끝나면 소리극의 변사 같은 캐릭터가 등장해서 관객에게 말을 건다. 전혀 예상 못한 설정들을 보면서 '레토'의 위트와 리듬이 여러모로 훌륭하다는 걸 느낀다.



청춘이 음악이라면, 그 배경은 늘 여름


빅토르 최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뮤지션이다. 그의 일대기를 그대로 보여줘도 영화가 될 거다. 그러나, '레토'는 다른 선택을 한다. 빅토르 최가 이제 막 음악에 입문하는, 그가 영웅이 되기 이전 시기에 집중한다. '레토'가 집중하는 건 한 인물이 아니라, 시대의 분위기다.



인물들을 보더라도 빅토르 최만큼 중요한 건 그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인물이다. 빅토르 최의 멘토가 있고, 멘토의 부인이 있다. 이 셋의 관계는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기류는 빅토르 최의 노래 가사만큼이나 특이하다. 


유태오 배우의 러시아어 연기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오히려 장발을 비롯해서 배우들의 분장이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그 어색함이 영화를 더 사랑스럽게 만든다. 억압의 시대에서 뭘 하려고 해도 저항이 많은 청춘들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어색함은 필수일 테니까. 인물들의 행동이 전적으로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에 있어서 허술한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레토'가 보여주는 전체적인 무드와 음악에 대한 애정은 단점들을 상쇄할 만큼 사랑스럽다.



'레토'를 생각하면 바다부터 떠오른다. 영화 후반부에 취한 인물이 스크린 속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관객을 체험하게 만드는, 즉 '시네마'의 순간이다. 청춘의 행동양식조차 정해놓은 사회에서, 이들은 음악으로 모든 걸 분출한다. 양식장 같은 사회에서 이들은 음악을 이용해서 바다로 나아간다. 늘 뜨겁게 타오르는 몸을 이끌고 바다로 향하는 이들의 계절은 영원히 여름일 것만 같다.


'레토'는 겨울에 만난, 아주 괜찮은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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