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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Sep 05. 2020

매일매일 처음 먹는 나이에 놀라

나도 내가 이 나이에 이럴 줄 몰랐어

금리는 낮아지고 있는데, 시간은 복리로 불어서 빠르게 다가온다. 덕분에 아무리 태연한 척하려고 해도 나이가 신경 쓴다. 매일매일 처음으로 보는 나의 나이에 놀란다. 나이에 익숙해질 때쯤 다음 나이로 넘어간다. 2010년이 입에 붙기도 전에 2020년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흑역사는 나이를 먹지 않는구나


과거를 떠올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늘 미래를 생각한다. 내가 보는 나의 과거는 아름다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찬란한 과거가 많았다면 과거에 취해있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런 과거는 없다. 그저 살짝 웃고 넘어갈 정도의 과거가 몇 장면 있다. 잊고 싶어도 계속 떠오르는 과거들은 하나 같이 창피해서 이불을 걷어차게 만든다. 


과거의 흑역사를 덮기 위해 미래에 무슨 짓을 해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괜히 흑역사가 아니다. 검게 칠해진 과거의 창피한 기억에 형형색색의 밝은 색을 칠해봐야 별 소용없는 일이다. 검게 칠해진 과거가 모든 걸 삼킨다. 나이를 먹으면 잊게 될 줄 알았는데, 과거의 검은 추억 덩어리가 기억 한 구석에 굳은살처럼 박혀있다. 머릿결과 피부는 하루하루 푸석해져 가는데, 흑역사는 탱탱하게 기억 안을 뛰어놀고 있다.



나도 내가 이 나이에 이럴 줄 몰랐어


미래를 고민하느라 지금 당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늘 지금 내가 누리는 나이가 가장 어린 나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걸 즐기지 못했다. 부족했던 과거에 후회하고, 현재와 동떨어진 멋진 미래를 꿈꾸느라 순간순간을 흘려보낸다. 행동은 안 하고 생각만 많다. 


'몇 살이 제일 좋은 나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요즘 내 관심사는 내가 몇 살쯤 되어야 있는 그대로의 내 나이를 받아들이고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입에 달고 사는 '미래'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미래를 꿈꿀 때 비현실적일 정도로 발전적인 모습을 그리기 때문일까. 


'이 나이 때쯤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라고 상상한 모습 중에 실제로 상상과 싱크로율이 맞았던 적은 거의 없다. 대학, 군대, 취업, 연애, 친구 등 무엇 하나 내 마음 같지 않다. 각종 매체에서는 여전히 20대는 어때야 하고, 30대는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매일매일 처음 먹는 나이에 놀라


나라고 내가 이 나이에 이럴 거라고 예상한 건 아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기장에 적힌 고민이 비슷한 걸 봐서는 앞으로도 나는 내게 찾아올 나이 앞에 당황할 것 같다. 이 나이에 이렇게 살고 있단 말이야? 매일매일 처음 먹는 나이에 당황한다. 


누군가에게 나이별 행동강령이나 가이드북을 달라고 하고 싶지만, 아무리 봐도 내 삶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치는 이는 없다. 누구나 아침마다 당황하지 않을까. 자신이 처음으로 먹는 나이 앞에서. 


 '처음 먹는 나이 앞에서 잘 적응 중이야?'


내일이면 또다시 처음 먹는 나이를 마주하겠지. 나에게도 주변에도 안부를 묻기로 한다. 잘 적응하고 있냐고. 하루하루 견뎠다면 처음 먹는 나이 치고는 잘 해낸 거라고. 




*커버 이미지 : 조르주 쇠라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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