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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Sep 04. 2020

카톡 친구가 없는 삶

모든 친구를 숨겨놓고 지내기

카톡을 실행한다. 알람이 뜨지 않아도 켜본다. 카톡이 기본 메신저가 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이러한 습관은 카톡을 처음 접했을 때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이나 비슷하다. 


심지어 카톡 친구를 모두 숨겨두었는데도 말이다. 숨겨둔 이유는 간단하다. 괜한 연락을 하게 될까 봐 그렇다. 연락 없이도 잘 지내지만 불쑥불쑥 누군가에게라도 연락을 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누구'여도 상관없을 때가 있고, 특정 인물에게 연락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뭔가 근거가 있는 연락이면 좋겠는데 뜬금없는 안부를 묻는 것이 조심스럽다. 돌이켜 보면 나조차도 오랜만이어서 반가운 연락이 있는가 하면, 이 사람이 왜 연락했을까 싶은 연락도 있었으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연락은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생일이나 새해에 보내는 카톡이 아니라면, 최대한 연락을 하고 싶어도 자제하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카톡을 자주 들여다본다. 굳이 숨긴 친구 목록으로 들어가서 친구들 목록을 본다. 내게는 숨긴 친구들의 카톡 사진이 그들의 안부이다. 인스타그램을 맞팔하고 있지 않은 친구들이라면 카톡 프사가 거의 유일한 정보이다. 왕래도 없이 카톡만 친구인 사람들을 보면 내가 이 사람과 연이 닿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분명 카톡 친구이지만 몇 년간 서로 연락이 없었고, 앞으로도 연락이 없을 확률이 높은 사람이 꽤 많다.


주기적으로 전화번호부를 정리한다. 전화번호부와 카톡 친구를 삭제하다 보면 삭제와 동시에 카톡에 '나를 친구로 등록한 사람'으로 그 사람이 목록에 뜨기도 한다. 그래도 저장은 되어있었구나 싶어서 신기하다. 하긴 굳이 전화번호부를 지우는 일은 드문 경우니까. 카톡을 설치한 이후로 프사를 한두 번 밖에 안 바꿨기 때문에, 카톡 프사로 내 안부를 전할 수도 없다. 


숨긴 친구 목록에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도 있고, 자주 만나던 친구도 있다. 다음에 한번 봐요, 라는 말이 마지막이었던 이들도 많다. 오랜만에 대화방에 들어가 보면 몇 년 전에 나눈 대화가 보인다. 대화방에서 나가기를 누른다. 언젠가 한번 보겠지, 라는 식의 희망을 품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다. 


노력 없이 이어지는 인연은 없다. '난 원래 먼저 연락을 잘 안 해'라는 말을 하는 친구를 보면 기운이 빠질 때가 있다. 내가 손을 놓으면 자연스럽게 소원해질 사람. 이제 내 시간과 기력도 한정되어 있기에,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된다. 여전히 내 숨겨진 카톡 친구 목록에 있는 친구들이 그래서 더 고맙게 느껴진다. 뜬금없이 연락해도 마음이 편한 친구들이 결국 남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한 마음으로 연락해야 하는 사람은 아마 영원히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마음은 늘 갈팡질팡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카톡 친구 목록은 앞으로도 숨겨놓을 것 같다. 내 마음을 숨기게 되는 사람과는 카톡에서조차 친구가 되기 힘들 것 같고,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카톡에 남게 되지 않을까.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은 친구들처럼, 카톡의 가장 안쪽 자리 어딘가에 '숨긴 친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친구들의 목록을 본다.



*커버 이미지 :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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