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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Sep 06. 2020

보는 눈과 쓰는 눈이 함께 가는 글쓰기

내 눈에 부족해보이는 글을 완성시키기

만족스럽지 않아도 누를 수밖에 없는 발행 버튼


브런치에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1일 1글을 쓰자고 마음 먹은지 오늘로 9일째다. 아직 열흘도 안 지났지만 쉽지 않다고 느낀다. 7일 동안 7개의 글을 쓰라고 했다면 아마 벼락치기로 몰아서 쓸 걸 알기에 하루에 한편씩 쓰기로 마음 먹었다. 나태해질 때마다 주변에 떠벌리고 다닌다. 책임감을 위한 가장 좋은 장치는 창피함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못 지키는 것만큼 창피한 일은 없기에, 오늘도 쓴다.


분량도 얼마 안 되는 글이지만 쓰면서 힘든 이유는 내 눈에 내 글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한 부분이 넘쳐나는데 퇴고는 커녕 초고를 완성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차피 엄청난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음에도 부족한 부분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눈이 높은 것도 문제다. 평소에 읽는 책들은 대부분 좋은 문장들로 가득하고, 그런 문장만 읽다 보니 눈이 높아졌다. 그에 비해 내가 쓰는 글은 형편없어 보인다. 세상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이 얼마나 정확한 말인지 머리와 마음으로 공감한다. 


매일 쓰긴 써야겠고, 이왕이면 잘 쓰고 싶고. 그래도 매일 쓰기로 했으므로 발행 버튼을 누른다. 발행 버튼을 누른 뒤 후회의 시간을 가지며 잠든다. 내일은 나아지길 바라지만, 내일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다음날 눈을 뜨면 어젯밤에 발행한 글의 오타와 비문을 발견하고 좌절할 뿐이다.



보는 눈이랑 쓰는 눈이 함께 가야해


글과 관련해서 들었던 말 중에 최근 들어서 가장 공감하는 말은 '보는 눈과 쓰는 눈이 함께 가야한다'는 거다. 보는 눈은 높은데 그에 비해 쓰지 않으면, 결국 쓰는 걸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한껏 높아진 눈으로 보자면 내 글이 너무 형편없을 테니까. 


보는 눈과 쓰는 눈의 싱크로율을 맞추기 위해서 보는 걸 자제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좋은 작품을 계속 보되, 글도 그만큼이나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할 거다. 무척이나 뻔한 이야기인데 지키는 게 쉽지 않다. 읽는 게 쓰는 것보다 편한 건 사실이니까. 남의 글을 읽고 지적하는 건 쉽지만, 막상 내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인 것처럼 말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글과 관련한 유일한 진리는 다독, 다상, 다작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 외에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글을 쓰기 싫은 이유도 이러한 진리를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요행을 찾고 싶은데, 작은 샛길조차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삶의 상향평준화를 꿈꾼다. 보는 눈도 쓰는 눈도 함께 높아지면 좋겠다. 오늘은 집에서 평소 자주 가는 영화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부터 최근에 읽는 에세이까지 여러 글을 읽었고, 보는 눈이 조금은 높아졌음을 느꼈다. 오늘의 글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약속했으므로 발행을 누른다. 쓰는 눈도 높아졌기를 바라면서. 



*커버 이미지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 책 읽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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