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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Sep 09. 2020

드라마가 끝나고 마주한 내가 못나보여

드라마의 환상, 현실과의 괴리

드라마의 환상


유튜브를 본다. 집에서 별일 없으면 하는 일이다. 요즘에는 별일이 있어도 유튜브를 보며 멍하게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내가 유튜브를 보는 게 아니라, 유튜브가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다.


유튜브에서 추천해주는 영상을 본다. 더 이상 볼 영상이 없을 때까지 보자고 생각하는데, 유튜브에는 끝이 없다. 내가 최근에 봤던 영상 때문일까. 어느새 내가 보고 있는 영상은 드라마 클립이다. 몇 년 동안 드라마를 본 적 없는데,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클립 몇 개를 보다가 작정하고 본 드라마도 있다.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것보다 하이라이트 클립이 더 재밌는 걸 보니 역시 편집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이라이트만 보면 무엇이든 재밌다. 드라마나 삶이나.


오늘도 몇 개의 드라마 클립을 봤다. 하이라이트만 봐도 드라마를 다 본 느낌이다. 삶이 척박해질수록 굳이 드라마에서 갈등을 찾아보고 싶지 않다. 삶도 고된데, 굳이 내가 보는 영상에서도 인물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드라마 클립 중에서 즐거운 모습만 편집된 영상을 본다. 갈등 따위 없이 아름답다. 나도 저런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과 드라마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저들이 걷고 있는 곳이 세트라는 걸 알고, 저들을 바라보고 있는 스텝이 수백 명이라는 걸 알고 있다. 슬레이트를 치고 난 뒤에 배우들은 집에 돌아가서 현실을 살 거고, 예쁜 모습을 만들기까지 스텝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드라마와 현실의 괴리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과 다르다는 걸 안다. 처음으로 그걸 알게 된 순간은 언제였을까. 드라마가 끝난 뒤 마주한 내 모습 때문인 것 같다. 드라마 속 집과 내가 사는 집은 너무 달랐다. 집뿐만 아니라 입는 옷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게 달랐다. 드라마 속에서 내내 보이는 반짝임이 우리 집에는 없다. 드라마 속 환상에 잠시 들어갔다가 마주한 스스로가 평소보다 못나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언젠가부터 드라마에 몰입하는 게 망설여진다. 드라마가 끝난 뒤 마주하는 현실이 싫으니까.


내가 사회화를 하는 데 있어서 어릴 적에 본 드라마의 영향도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드라마의 장르가 스릴러부터 오컬트까지 다양해졌지만, 그렇게 된 것도 몇 년 안 되었다. 주류 드라마는 언제나 로맨스였고, 직업군은 천편일률적이다. 드라마는 여전히 발전 중이지만, 도식적인 부분을 그대로 가져가는 드라마도 그만큼 많다. 



드라마에서 학습한 것들


글을 쓰다 보니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성탄특선'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연인이 가난했던 시절을 막 벗어나 좀 더 여유가 생긴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한다. 다른 연인들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고 호텔에서 멋진 밤을 보내고 싶지만, 막상 간 레스토랑은 말도 안 될 만큼 비싸고 호텔은 이미 모든 예약이 끝난 지 오래다. 


이들이 생각하는 다른 연인들의 모습은  드라마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본 것일 거다. 크리스마스에 해야 하는 일을 자신들의 욕망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학습해온다. 드라마에서 봐온 장면을 흉내 내는 건 가장 쉬운 방법이다. 드라마 속 장면은 정말 멋졌으니까. 


'성탄특선'은 어릴 적 크리스마스 선물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분명 산타 할아버지가 준 선물 같은데 예쁜 포장지가 아니라 검은 봉지에 들어있는 게 이상하다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분명 예쁜 포장지에 들어있어야 하는 거니까. 


드라마 스텝이 고백하는 현장의 치열함을 봐도, 드라마 속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보여주는 우리와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에도 드라마의 장면들은 여전히 빛난다. 자신이 삶이 드라마라고 했을 때 어떤 장르를, 어떤 캐릭터를 꿈꾸는가. 내 삶을 편집한다면 예쁜 장면이 나오기는 할까. 만약에 진짜로 내 삶을 편집할 수 있다면, 드라마 속 장면을 내 삶인 척하고 넣어버릴지도 모른다. 


내 삶은 왜 이렇게 드라마와 다르지. 너무 뻔한 질문을 오랜만에 나에게 던졌다. 유튜브로 보던 드라마 클립을 끄고, 거울을 본다. 내가 마주해야 할 건 이 놈이니까. 이 캐릭터로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일단 써보기로 한다.



*커버 이미지 : 뭉크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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