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떨어진 좌석, 반가운 스크린
퇴근 후나 주말에 제일 많이 하는 건 영화를 보는 일이다. 올해 들어서는 극장에 거의 못 갔다. 올해 개봉 예정작들도 대부분 개봉이 연기되었고, 그나마 본 영화들도 모두 재개봉작들이다. 좋은 영화들이 재개봉한다는 건 좋은 소식이지만, 영화를 보고 싶다는 거대한 갈증이 느껴지지 않는 한 극장에 가는 게 쉽지 않은 시기다.
올해 개봉작 중 본 영화라고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 뿐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작품인데, 보자마자 한번 더 보고 싶다고 느낄 만큼 흥미로웠다. 코로나 이후로 처음 간 용산 CGV인데, 좌석 사이사이에 있는 좌석을 아예 없애버린 게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다닥다닥 붙어 앉아보던 그동안의 아이맥스 상영보다 좀 더 편하게 영화를 봤다.
2020년이 되고 가장 많이 간 극장은 대한극장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가장 자주 가는 극장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규모가 큰 영화부터 아트필름까지 상영작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극장이다. 장예모 감독의 초기작들이 재개봉했고, 이때다 싶어서 네 편을 봤다. <붉은 수수밭>, <홍등>, <귀주 이야기>, <인생>을 보기 위해 거의 매일 출석하듯 대한극장에 갔다. 네 편 모두 흥미로웠는데, 장예모가 주로 쓰는 붉은 색감과 서사가 가장 잘 섞인 <홍등>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대한극장 1층 로비는 내가 선호하는 약속 장소이기도 한다. 코로나 이후로는 대한극장 1층 입구에 소독기를 비롯해서 출입 관련 장치가 생겼다. 익숙했던 공간에 다른 절차가 하나 추가되니 많이 낯설어진 느낌이다.
몇 년 만에 서울아트시네마도 다녀왔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를 보기 위해서다. 신기하게도 지인이 내 옆자리였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은 오랜만인데, 영화 속 의상들의 색감이 너무 아름다웠다. 서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올해에 몇 번이나 더 극장을 가게 될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다 보면 스크린 대신 폰으로, 극장 대신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게 더 자연스러워질 것만 같다. 별 일 없으면 가던 극장이 작정해야 갈 수 있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가장 영화적으로 느껴진다.
*커버 이미지 :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