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눈에서 탈출하기
콜라겐교차결합술 원추각막 수술 후기
수술 전 검사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각막수술을 받았다. '원추각막'이라고 부르는 뾰족한 눈을 방치하면 시력이 더 떨어지고 반대편 눈도 안 좋아질 수도 있어서, 원추각막이 심한 왼쪽 눈을 수술하기로 했다. 처음 증상을 발견한 건 교복을 입던 때다. 10년도 넘은 시간이 지나서 수술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원추각막'으로 검색했을 때 후기가 제일 많이 나오는 병원 두 곳을 찾아서 각각 검사를 해보았다. 바로 예약이 되는 곳이 있었고,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서 겨우 간 곳이 있다. 수술 가격도 달랐고, 분위기도 달랐다. 두 곳 모두 사람들로 가득해서, 검사를 받는 동안은 기계부품이 된 기분이 들었다. 검안사를 따라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나면 결과가 나와있다. 모든 것이 착착착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전개된다. 공장처럼 돌아가는 병원. 아픔을 고치는 공장이 있다면, 모든 게 자동화되어 있다면 제법 편할 것 같다.
두 병원 중 수술 날짜가 맞는 한 곳에서 수술을 했다. 약속이 있을 때는 원데이 렌즈를 끼는 편인데, 수술을 앞두고 2주 동안은 렌즈를 착용할 수 없다. 당일 아침 일찍 가야 했기 때문에 전날에는 일찍 잠이 들었다. 수술 후에 볼 수 있는 게 제한될 것 같아서 이것저것 잔뜩 보고 늦게 잘까 싶었으나, 눈 수술을 하는데 최대한 좋은 컨디션으로 가는 게 맞을 듯해서 포기하고 잤다.
수술 시작
수술하고 퇴원까지 시간이 꽤 걸리고, 한쪽 눈만 수술하기 때문에 혼자 갔다. 너무 불편하면 그때 동생이라도 불러야겠다고 생각은 해둬서, 동생에게 병원 위치를 네이버 지도로 공유했다. 집에서 강남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태어나서 내 의지로 하는 첫 수술이다. 게다가 눈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괜히 긴장도 되었다. 시력교정 수술이면 엄청난 변화라고 있을 텐데,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한 수술이다 보니 아마 극적인 변화도 없을 거다. 몇몇 후기를 보면 아프다는 이야기도 있고, 병원에서도 아플 수 있다는데, 결과적으로는 각자 눈 상태에 따라 아픔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금요일 오전에 도착한 병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원 문 여는 시간보다도 일찍 도착한 덕에 텅 빈 병원을 목격할 수 있었다. 불도 꺼진 병원에 들어가서 앉은 채 대기했다. 병원 직원들이 하나둘씩 병원에 도착했고, 간단한 검사 몇 개를 받았다. 검사가 끝난 뒤에는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수술실에는 금세 사람들이 가득 찼다. 연휴를 알고 수술을 하는 건 일정상 꽤 효율적인 생각이다. 수술은 명절을 피하기 좋은 명분이기도 하고, 공휴일을 활용해서 회복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니까. 수술 전에 수술에 대한 설명과 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약 같은 경우는 이전에 수술 날짜를 잡은 검사날에 미리 처방을 받았다. 수술 당일에는 처방을 안 해준다는 말을 듣고, 검사가 수술로 이어지게 하려는 괜찮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공눈물과 안약을 넣게 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환자복이라도 입어야 하나 싶었으나 옷도 그대로이고, 마스크도 쓴 채 수술을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고 나서 눈에 마취약 같은 걸 넣고 수술을 위한 거라면서 펜으로 눈에 점도 찍었다. 감각은 딱히 없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수술을 했을까 싶은 의사가 있는 수술대로 향했다.
수술대에 누워서 눈에 보이는 불빛에 집중하라는 말을 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임무가 주어졌다는 게 꽤나 부담이다. 원추각막의 대표적인 증상은 사시라서, 눈에서 집중을 조금만 풀어도 눈의 초점이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이탈한다. 그래서 수술 내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체감하기로는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아프지는 않았다. 눈에 엄청나게 차가운 무엇인가 들어갈 때 너무 시려서 움찔했던 게 전부였다. 그 외에는 중앙에 있는 불빛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눈에 안약을 주기적으로 넣어줬고, 내 눈이 초점을 잃으려고 하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말이 들렸다. 또랑또랑한 정신과 함께 수술은 끝이 났다.
수술 끝
수술이 끝나고 입원해서 회복을 하다가 약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듣고 퇴원했다. 통증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보호렌즈를 껴서 그런지, 약간의 이물감 정도만 느껴졌다. 자외선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쓴 채 카카오 택시로 택시를 호출했다. 선글라스를 사본 적이 없어서, 어머니의 선글라스 하나를 빌려왔다. 선글라스를 쓴 내 꼴이 꼭, 이제 막 세상에 나와서 지나가는 아줌마의 선글라스를 빼앗아 쓴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 같다. 수술하고 머리도 산발이라 더 그랬다.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로 모든 걸 가린 채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오늘은 다행히 안 막히네요."
택시 기사분에게는 내가 방금 성형수술을 하고 온 사람인지, 그냥 수상한 사람인지 알 방법이 없을 거다. 많이 막히는 시간이라는데 다행스럽게도 길이 안 막혔고, 통증도 별로 없었다. 수술한 눈을 감은 채 다른 쪽 눈으로 폰을 확인한다. 회사 메신저를 확인하니 수술 잘했냐는 메시지가 와있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을 답장으로 보낸다. 나중에 보내도 될 답이지만 빠르게 보내본다.
'잘 되었습니다.'
완전한 회복까지는 몇 달이 걸릴 거다. 삶에서 수많은 뾰족하게 모난 부분 중에 눈이라도 좀 순탄해지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한다.
*커버 이미지 : 르네 마그리트 '가짜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