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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느린 영화여도 2배속이나 넘기기를 하지 않는

허우 샤오시엔 영화를 보다가

by 김승

글 마감 때문에 급하게 영화를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영화를 2배속이라도 해서 볼까, 라는 유혹이 든다. 러닝타임도 긴데 느린 호흡의 영화를 보는 건 꽤나 지구력이 필요한 일이다.


평소에 보는 거의 모든 종류의 영상이 빠르다. 편집의 속도감은 점점 빨라지고, 긴 러닝타임의 영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키보드에서 버튼 하나만 눌러도 영화의 장면은 금세 넘어간다. 그런데 감독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몇 초를 가지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소감으로, 어떤 장면을 좀 더 짧게 혹은 길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감독이 만든 세계가, 그 세계의 속도와 리듬이 관객의 클릭 한 번으로 무너진다.


롱테이크로 유명한 영화들이 있다. 오래 지켜보게 만들고, 응시하게 되는 영화들. 그런데 만약 2배속을 하거나 빨리 넘기면서 본다면 그건 그 장면을 제대로 본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나무를 5분 동안 보여준다는 걸 확인하고 바로 넘겨버리는 것과 나무를 5분 동안 바라보는 건 완전하게 다른 경험이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최근작 '자객 섭은낭'은 무협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느린 호흡을 자랑한다. 칼로 싸우는 장면 대신 칼을 들고 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사유하는 영화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기준에서는 많이 정적으로 느껴지는 영화였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말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 있어서 영화는 세상에 대한 예의라고. 세상을 응시하듯 지긋이 현상을 바라보는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일 거다.


영화를 2배속으로 보는 일은 내 삶에 없을 거다. 영화가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의 속도가 느리다고 보챌 수 없는 거고, 빠르다고 붙잡을 수도 없는 거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 사람의 속도와 리듬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를 보게 될 거다. 영화를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많이 봤다고 자랑하기 위해서라면 2배속이 답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모르는 세상을 영화를 통해 배운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내 속도와 맞지 않는 세계의 속도를 임의로 조정할 수는 없다. 그저 그 속도를 경험해볼 뿐이다. 앞으로도 많은 영화를 보고, 많은 세계를 경험하게 될 거다. 영화의 속도를 존중하면서 어떤 사람, 어떤 세계의 속도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으로, 아주 천천히 흐르는 영화를 응시한다. 내 삶의 아주 느린 순간을 목격하듯이.



*커버 이미지 : 영화 '자객 섭은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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