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결의 사람일까
'결'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저 사람과 나는 결이 다르다, 라는 식의 표현을 쓴다. 분위기일 수도 있고 성격이 될 수도 있고, 결이라는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확실한 건 결이 맞지 않는 이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아이러니한 건 결이 다른 사람을 보면 호기심이 든다는 거다. 나와는 너무 다르니까. 저 사람과 나의 결이 달라서 소통의 한계를 느낄지도 모르지만 궁금해진다. 살면서 내가 만든 나만의 결이라는 게 있다. 나조차도 스스로 인지 못하는, 그러나 사람들은 인지할 나만의 결. 그리고 내 눈에도 보이는 사람들의 결이 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나와 맞을지 안 맞을지 판단한다. 결이라고 포장해서 말했지만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결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긍정적인 호기심으로 시작한 대화가 흥미롭게 이어진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 끝에 꽤 오래 지속된 인연이 있다. 그러나 결이 다르다는 그 판단은 제법 높은 확률로 맞다.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방어적으로 판단을 내렸을 테니까. 저 사람과 더 가까워지면 내가 상처 받을 거야. 이러한 자기 방어를 '결'이라는 말로 뭉뚱그려본다.
살면서 내가 속한 집단들은 꽤 여러 번 바뀌었다. 내 이상에 가까운 집단이었지만 가면을 써야만 적응 가능한 집단도 있었고, 정말 안 맞지만 맞는다고 믿고 버티듯이 속했던 집단도 있다. 지금은 그런 집단들을 거쳐서,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나와 결이 잘 맞는 이들만 주변에 남은 듯하다.
어차피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만 만나려고 해도 세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충돌할 일은 넘쳐난다. 회사에서 판단하는 나의 '결'과 가까운 지인들이 느끼는 나의 '결'에는 차이가 생기기도 하다. 사는 과정에서 나의 결은 조금씩 바뀌기도 할 거다. 몇 년 전 나의 결을 기억하는 이에게 낯설 만큼 바뀔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일까. 내가 믿는 나의 결은 사람들이 보는 결과는 또 다르겠지. 내겐 보이지 않는 나의 결을 상상해본다.
*커버 이미지 : 제임스 엔소르 '가면들 중의 엔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