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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영화 10편 뽑기

영화를 뽑는 건 늘 어렵다

by 김승

각종 영화잡지와 평론가들이 뽑은 영화 리스트를 보는 건 흥미롭다. 매해 연말이면 이러한 종류의 리스트가 등장하는데, 시기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인생 영화 리스트라는 게 존재한다. 아무리 권위 있는 평론가가 뽑은 리스트여도, '인생 영화'는 지극히 사적인 취향의 나열일 수밖에 없다.


인생 영화를 뽑으려고 하면 망설여진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리스트를 채우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기준에서 내가 봐야 할 영화는 아직도 많이 남았고,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라고 하는 영화 중에서 못 본 영화들이 많다.


인생 영화 리스트만 봐도 그 사람의 취향이 보이는 만큼 이왕이면 있어 보이는 리스트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런데 만약에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영화'를 뽑으라고 하면 그건 '인생 영화'와는 또 다른 리스트가 될 듯하다. 내일이 담보된 상태에서 인생 영화를 선택하는 건 꽤나 여유로운 일이지만,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영화는 보는 내내 막막할 것 같다. 죽기 전에는 영화보다 사람이 더 보고 싶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 글을 쓴 김에 왓챠에서 살펴보니 만점을 준 영화가 53편이다. 너무 오래전에 봐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영화도 있고, 여러 번 봐서 외우다시피 하는 영화도 있다. 애초에 이 글을 쓴 이유는 지극히 사적인 나만의 인생 영화를 뽑아보고 싶어서다. 나도 나의 취향을 아직 모르겠다. 며칠 뒤에 또 바뀔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지금 내게 의미 있는 영화는 다음과 같다.


-중경삼림(1994, 왕가위)

-큐어(1997, 구로사와 기요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이누도 잇신)

-킬빌(2003, 쿠엔틴 타란티노)

-도그빌(2003, 라스 폰 트리에)

-형사(2005, 이명세)

-히든(2005, 미하엘 하네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코엔 형제)

-괴물의 아이(2015, 호소다 마모루)

-라라랜드(2016, 데미언 셔젤)


순위는 없고, 시대 순으로 나열해보았다. '중경삼림'은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깊게 파기 시작한 시작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큐어'는 내가 평소에 품고 있던 고민을 스크린으로 목격한 기분으로 보게 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품고 있는 감성이 좋아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DVD로 사기까지 했다. '킬빌'은 영화에 미쳐있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고, '도그빌'은 형식부터 서사까지 감독의 배짱에 놀라게 되는 영화다. '형사'는 영화를 분석하지 않고 느끼게 한 첫 영화였고, '히든'은 영화가 품어야 할 고민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내가 아는 가장 단단한 작품이고, '괴물의 아이'는 보면서 가장 많이 운 영화다. '라라랜드'는 보면 볼수록 더 좋아질 영화다.


몇몇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고민이 되었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이 정도가 떠오른다. 딱히 공통점은 없어 보인다. 포함 못 시킨 작품들이 아른거린다. 연말에 이 리스트에 변동이 생길지 기대해보며 앞으로도 부지런히 영화를 봐야겠다.


*커버 이미지 : 영화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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