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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 day 1 scene

흑미밥으로 버틴, 흑미 같은 하루

출근 때마다 먹는 흑미밥

by 김승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 중이다. 팀원들 중에는 밥을 거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밥심으로 무엇이든 하는 스타일이라 혼자서라도 밥을 먹는다. 밥심의 중요성 이외에도 밥을 챙겨 먹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 배에서 울린 꼬르륵 소리로 가뜩이나 조용한 사무실의 정적을 깨고 싶지 않아서이다. 무엇을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꼬르륵거리지 않기 위해서 밥을 먹는다는 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점심을 왜 먹나요? 묻는다면 '배고파서요' 대신 '꼬르륵거리지 않으려고'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먹게 되면 늘 가는 백반집에 간다. 점심에는 한식 뷔페를 운영하고, 저녁에는 치킨도 판다는데 늘 점심에만 가기에 내게는 백반집이다. 이곳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흑미밥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바깥에서 밥을 먹을 일이 늘어날수록 흑미밥에 대한 애정이 커졌다. 이상한 믿음 때문인지 몰라도 흑미밥을 먹으면 좀 더 건강하게 밥을 먹은 기분이고, 배도 좀 더 든든하게 차는 기분이다.


음식에 그리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팀원들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면 음식에 대한 불만이 하나씩 나오기도 하는데, 엔간하면 맛있게 먹는 편이라 그런지 내 기준에서는 대부분의 음식이 맛있다. 식탐도 있고, 남기지 못하는 편이라 늘 많이 먹는 편인데 그런 내 기질에 한식 뷔페는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나오든 가득 퍼서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밥이 맛있다면 대부분의 반찬도 밥반찬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이곳에는 늘 흑미밥이 있으니까. 별생각 없이 찾아간 밥집에서 흑미밥이 나오면 먹은 것 이상의 든든함을 느낀다.


눈 수술 이후로 항생제를 하루 세 번 먹느라 매 끼니를 든든하게 먹다 보니 살이 많이 쪘다. 주변에서도 슬슬 살쪘다는 속 긁는 이야기를 숨 쉬듯이 던지는데, 살을 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출근하는 날에는 오전을 버티기 위해 밥을 먹고, 오후를 버티기 위해 밥을 먹는다. 꼬르륵 소리를 내지 않고 버티기 위해 밥을 열심히 먹는다. 집에 오면 항생제를 먹기 위해 밥을 먹는다. 그렇게 하루 세 번의 밥을 먹고, 세 번의 약을 먹으면 하루가 끝이 난다.


검은 밥을 세 번 씹으면 하루도 검게 변한다. 검은 쌀 안에서 단 맛이 강하게 난다. 검게 보이지만 곱씹다 보면 달아지는 흑미가 나의 하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흑미밥을 먹으며 꾸린 내 하루도 어둡게 보여도 순간순간 돌아보면 분명 좋았던 순간도 있으니까.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막으려고 먹지만 결국 맛있어서 마구 흡입하게 되는 밥이나, 밥심으로 꾸역꾸역 해낸 회사 업무가 별 탈 없이 지나가는 순간.


흑미밥으로 버틴, 흑미 같은 하루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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