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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Oct 15. 2020

포켓몬보다 쓸모없는 사원이 되면 어쩌지

쓸모 있는 포켓몬 혹은 사원

Y는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다. 여러 불만 끝에 4학기씩이나 다닌 대학을 그만두고 다시 수능을 봤기 때문이다. 대학교 합격 발표 이후 처음 받은 연락은 '새터'에 오겠냐는 연락이었다. '새내기 배움터'의 줄임말이라는 '새터' 앞에 Y는 자신의 나이가 걸렸다. 그러나 이미 한번 망친 대학생활을 다시 한번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참석하겠다고 답한다.


강원도에서 열린 새터 현장에서, Y는 자신이 속한 조를 둘러본다. MBTI가 유행하기 한참 전이었던 당시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모든 구성원들의 MBTI 결괏값이 'I'로 시작했겠다 싶을 만큼 얌전하고 내성적인 학생들이 한 조가 되었다. 유교주의는 이런 위기 속에서도 단단함을 지키기에, 나이가 가장 많은 Y는 조장이 되어 깃발을 흔들며 각종 레크리에이션에서 선봉에 선다. 


새터의 마지막은 무대에서 나가서 하는 장기자랑이었고, Y는 이 그룹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각자에게 캐릭터를 부여해서 포켓몬스터를 연기하기로 한다. Y는 어릴 적부터 포켓몬스터를 탐닉하고, 포켓몬스터 빵이 자신의 성장에 팔 할을 차지했다고 생각할 만큼 포켓몬스터에 대한 애정이 컸다. 


Y는 포켓몬스터를 떠올리다가 영화평론가 출신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를 떠올렸다.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 첫 번째 '영화를 다시 보고', 두 번째 '영화에 대해 쓰고', 세 번째 '영화를 만드는 거'라고 말한 프랑소와 트뤼포를. Y는 포켓몬스터를 수도 없이 돌려보았고, 남들이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을 탐닉할 때 친구들과 포켓몬스터를 배경으로 창작소설을 썼고, 성인이 되어서도 포켓몬스터를 활용해서 장기자랑을 하기로 한 자신을 보며 자신이 포켓몬스터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MBTI 결과가 I로 시작할 것은 친구들은 피카츄부터 리자몽까지 각종 포켓몬스터를 흉내 내며, 새터의 밤은 깊어갔다.


새터에서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지우 역할을 맡았던 Y는 이제 새터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을 지나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포켓몬스터에서 지우가 여행을 시작하는 조용한 태초마을에 비하면, Y가 출근을 시작한 선릉역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이젠 더 이상 Y는 포켓몬을 움직이는 지우가 아니라, 오히려 포켓몬에 가까워졌다는 거다. Y는 회사의 대표가 자신의 주인인 것 마냥, 하나의 포켓몬이 된 기분으로 움직인다. 채찍만 안 들었다 뿐이지, 혓바닥을 채찍 삼아 쓰는 이의 손 안에서 하루하루 부지런히 업무를 수행한다.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보상이 오진 않지만, 이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야근을 한다.


Y는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해나가면서 몇 달을 보냈지만, 포켓몬스터 게임과 달리 자신의 레벨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의 레벨을 가늠하는 방법은 오직 대표의 눈치를 보는 것뿐이다. 칭찬을 하는 걸 보아하니 레벨이 오르긴 오른 것 같고, 그런데 칭찬의 빈도에 비해 욕을 먹을 때가 더 많을 걸 보아하니 아직 경험치가 부족한가 싶고. Y는 이런 상황 속에서 생각하게 된다. 과연 자신은 쓸모 있는 포켓몬인가. 대결에 앞서 선봉에 내세울 만큼 강력한 포켓몬이 될 수 있는가. 회사를 둘러보니 자신보다 쟁쟁하고, 대표에게 인정받는 포켓몬들이 많다. 


Y는 그 어떤 전투 기술도 없이 튀어 오르기만 하는 포켓몬 '잉어킹'을 떠올렸다. '갸라도스'로 진화만 한다면 강력해지겠지만, 진화할 수 없는 잉어킹은 버려질 게 뻔하다. 잉어킹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인문학적인 감상에 젖어보려고 하지만, Y는 회사를 떠도는 숫자들 사이에서 그런 상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승리할 수 없는 포켓몬은 버려지는 당연한 것임을, 굳이 회사가 아니어도 게임 속에서도 느꼈으면서 말이다.


"시간 아까워."


Y는 대표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무엇인지 떠올린다. 시간 아까워, 라는 말이 떠올랐다. 대표는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사는 사람이었고, 누구를 만나거나 어떤 업무에 대한 보고를 보고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시간 아깝다는 말을 했다. 어떤 일이 투자 가치가 있는 일이고, 어떤 일이 시간이 아까운 일인지 그 기준은 알 수 없었다. Y는 그 기준을 알 수 없는 이유가 자신의 레벨이 낮기 때문이라도 생각하며, 자신이 가진 유일한 기술인 '눈치보기'를 시전 한다.


시간 아깝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Y는 어느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Y의 업무, Y가 하는 말들이 과연 대표 입장에서 시간을 투자할 만한 것일까. Y는 대표가 정한 생산성의 기준선을 넘는 존재일까. Y의 능력치는 어떻게 책정되어 있을까. 대표님, 저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얼마인가요, 묻고 싶지만 말을 삼킨다. 그런 질문조차도 시간 낭비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


"저기 저 사람 혹시?"


Y는 자신과 새터에서 같은 조였던 동기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대표를 목격한다. Y가 가진 눈치보기 스킬은 발전해서 꽤 먼 거리에서도 대표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각종 가게들이 입점한 쇼핑몰 위층에서 바라보니, 아래층에서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고 다니는 대표가 보인다. 대표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에 눈을 둔 채 몰려있다. 사람들의 액정 위로 포켓몬들이 돌아다닌다. 이 쇼핑몰은 '포켓몬 고' 게임의 성지 중 하나인 게 분명하다. Y는 대표가 게임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게임은 그의 기준에서 생산적인 일이란 말인가.


대표는 오늘 이 쇼핑몰에서 어떤 포켓몬을 얻어갈까. 능력치가 좋은 포켓몬일까. 포켓몬 게임을 하는 시간은 아깝지 않은 시간으로 느껴질까. 쓸모에 대해 묻고 싶어 진다. 쓸모, 쓸모, 쓸모, 요즘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되었다. Y는 자신의 쓸모를, 자신이 보내는 시간의 쓸모를 생각하고, 대표가 하는 게임과 자신 중 무엇이 더 쓸모 있을지 고민해본다. 


내일 출근해서 대표에게 포켓몬 이야기를 꺼내면 그건 쓸모 있는 대화일까. 대표가 오늘 잡은 포켓몬이 자신보다 더 쓸모 있을까 봐 걱정하며, Y는 동기와의 대화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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