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가 연기하는 걸 본 적 있다
우리는 모두 연기하는 사람들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는 실제로 이탈리아 감옥에 수감된 이들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들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연기한다. 마약부터 살인까지 다양한 죄로 감옥에 온 이들은 오디션을 통해 배역을 얻고, 그 역할에 몰입한다. 영화는 무대 위 그들의 모습은 처음과 마지막에만 보여주고, 감옥에서 연습하는 그들의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내 주변에는 연기를 해본 사람이 많다. 배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친해지는 과정에서 이야기해보면 학교나 소모임 등을 통해 연기를 해보았다면서 자신의 경험을 말한다. 대부분은 자신이 연기를 해본 경험 자체를 즐기고, 기회가 있으면 또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연기 경험이 없는 이들도 한 번쯤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다닐 때 연극 무대에 선 적이 있다. 지금도 그때의 경험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학과 소모임에서 만든 연극이라서 규모가 크지 않았고 관객들도 많지 않았다. 다만 내 삶을 통틀어서 무대에 설 일이 얼마 없다는 건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나를 봐주고 박수를 쳐준다는 게 기분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배역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무대 위에서 나는 나를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이젠 더 이상 무대에 설 일이 없지만, 늘 연기 중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연기를 하지 않고 사회화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연기가 필요하다. 모든 이들이 좋은 배우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늘 연기하면서 살아가니까.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 속에 '익살을 부린다'로 번역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연기가 내게는 기본값처럼 느껴진다. '진짜 나',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물으면 당황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게 있기는 한가. 내 연기력은 점점 물이 올라서 이젠 '솔직한 나'도 적당히 연기할 수 있게 되었다. 연기하느라 진짜 나를 잊어버린 게 아니라, 애초에 진짜 내가 없고 다양한 연기를 하는 내가 뭉쳐져서 '나'가 된다고 믿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연출가의 요구사항을 따르듯,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사부터 친구까지 다양한 주변인들의 요구를 따라서 연기를 한다. 그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것을 한다면 답은 정해져이다. 죄인이 되거나, 미치거나, 죽거나. 나는 죄인, 광인, 유령 대신 연기자를 택하겠다.
'평소처럼 연기해봐'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의 평소는 많은 부분 연기로 지탱하고 있다. 함께 학교에서 연극을 준비했던 이들에게 연락해서 다시 연극을 해보자고 하면 무슨 답이 올까. 이제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답이 올까. 넌 언제나 연기 중이잖아,라고 말해버린다면 싸우자는 뜻이 될 거다.
'평소처럼 우리 다시 무대에 오르는 건 어때?'
은근슬쩍 물으면 아마 마음이 동하지 않을까. 밤이 깊어서 낭만적으로 상상해보지만, 내일 아침이면 괜히 짓을 할 뻔했다고 생각할 거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자는 생각은 접어두고, 일상에서의 연기를 이어나간다. 나는 점점 좋은 연기자가 되어간다. 나는 당신의 연기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꽤 합이 좋은 배우들이라고 믿으며, 세상이 무대라는 뻔한 비유를 들먹여본다.
*커버 이미지 :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