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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미워한다고 살이 빠지지는 않는

미워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by 김승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많은 어른들이 해주었던 이야기다. 자라면서 몸으로 느낀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건 많은 정신력이 소모되는 일이다. 미움도 어떤 이를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애초에 많이 밉지 않으면 딱히 생각나지도 않는다. 미움이 발현되려면 적극성이 필요하다. 싫어한다는 건 굉장히 적극적인 감정이다. 좋아하는 일만큼이나 자주 떠오르고, 힘을 쏟게 되는 일이다. 굳이 떠올리고 욕할 정도면, 얼마나 밉다는 이야기겠는가. 의식이 될 만큼 싫으니까 미워하게 되는 거고.


잠이 들기 전에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고 해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회사에서 나를 괴롭히던 상사나, 크게 상처를 준 지인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상상 속에서라도 복수를 하고 싶은데, 요즘에는 그런 상상을 해봐야 현실이 비루하게 느껴져서 포기한다. 아무리 모진 복수를 꿈꿔봐도, 현실에서 소심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테니까. 통쾌하기보다 무기력하기에, 상상을 관둔다.


그럼에도 미워하는 걸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복수를 생각하는 건 소인배'라는 말은 죄를 많이 지은 이들이 꾸며낸 말일 거다. 당한 게 많은데 어떻게 안 미워한다는 말인가. 아량 넓은 사람이 되기는 글렀는데, 어딜 가나 미워할 구석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적극적인 일이지만, 오로지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늘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좀처럼 살이 빠질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움은 나의 힘, 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미워하는 건 썩 유쾌하지 않다. 정신은 피폐해지는데 살은 안 빠지고, 미워하는 나까지 괜히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으니까.


사랑에 좀 더 힘을 쓰고 싶은데, 사랑은 좀처럼 티가 안 나고 원망은 쉽게 드러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칼로리 소모에 도움이 되었다면, 지금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싫어하면서 지냈을까. 원망 다이어트라니, 무시무시한 사업 아이템이 될 것 같다.


이왕이면 좋은 생각을 하며 잠들고 싶다. 일상에서 미움으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좁은 속을 가졌다. 미워하는 것의 순기능을 찾아보려고 해도 딱히 없다. 속이 편한 것도 아니고,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살면 어떤 기분일까.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면 이런 기분이란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이 아닌 이상 그런 사람은 없다고, 그렇다고 합리화하는 게 내 속이 편할 것 같다.



*커버 이미지 : 페르난도 보테로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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