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약점이 나를 대표하는 건 슬프니까요
약점을 숨기는 이유
"면접 때 개인적인 약점을 물어봐서 답했어요. 그게 지금도 후회가 돼요. 합격했지만, 회사는 제 약점을 알고 있는 거잖아요."
최근에 만난 지인이 해준 이야기다. 약점에 대해서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묻는 게 예의도 아니고, 타인의 약점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을 떠올리면 약점부터 떠오르게 될 게 뻔하다. 나였다면 면접관의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뭐라고 답했을까. 진짜 약점을 면접 때 말했다면 앞에 잔뜩 어필한 내 장점이 묻힐 테니, 그럴듯한 약점을 둘러대면서 말했으려나.
약점을 고백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약점을 고백한 이후로 그걸 의식하느라 태도가 묘하게 바뀐 타인을 본 적이 있다. 나 또한 그럴 때가 있었고. 약점을 알고도 자연스럽게 상대를 대하는 건 많은 성숙함이 필요한 일이다. 약점을 과하게 의식해서 부자연스러워지는 것도, 약점을 자꾸 들춰내는 것도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약점을 알고 우위를 점하듯이 구는 이들도 존재한다. 사회에서 약점을 들켜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악착 같이 강한 척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 것. 약육강식은 언젠가부터 사회에서 당연한 말이 되었다. 우리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인데, 발톱보다 강한 말들이 오간다.
나의 약점이 나를 대표하는 건 슬픈 일이다. 예를 들어서 주변에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우울한 애 말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내가 묘사되는 걸 보면 상처가 될 것 같다. 나의 눈, 코, 입처럼 약점 또한 나의 속성 중 하나로 봐주면 좋겠으나, 약점에 자꾸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끼리 '불행 배틀'을 할 때가 있다. 누가 더 우울하고 힘든지 경쟁하듯이 말하는 것. 그런 순간이 불편하다. 나는 나의 약점이 전시되기를 바라지 않으니까. 약점이 경쟁의 도구로 쓰이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이해와 위로가 전제되지 않은 자리에서 약점을 꺼내봐야 어떤 봉변을 당할지 뻔하다.
약점까지도 이해한다는 말에 나의 약점을 보여줬는데 뒷걸음질 쳤던 이들이 떠오른다.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약한 부분까지 포옹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저 꽁꽁 숨길뿐이다. 약한 부분이 없던 것처럼, 상처 받았던 적 없는 것처럼 더욱더 방어적으로 군다.
약점도 나의 일부이지만, 약점이 나를 대표하는 건 피하고 싶다. 좋은 부분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일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내 약점을 고백할 수 없다. 특별한 약점으로 기억되느니, 약점 없는 사람으로 잊혀지는 게 나를 보호하기에는 더 좋을 것 같다.
*커버 이미지 : 에두아르 마네 '자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