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 day 1 sce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 Dec 21. 2020

싫다면서도 계속 언급하는, 어쩌면 진실의 말

마음에 있어서 계속 나오는 어떤 말

누군지 모르지만 즐겨찾기에 추가해두고 보는 블로그가 몇 개 있다. 솔직하게 쓴 글을 보면 읽을 수밖에 없다. 꾸며쓴 글은 넘쳐나기에, 투박한 글에 더 마음이 간다. 익명의 글을 익명으로 읽으면서, 혼자서 친밀감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글쓴이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사랑은 불가능할 거야."


아마 영화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들어갔던 블로그였던 것 같다. 글이 흥미로워서 쭉 읽게 되었다. 성별부터 나이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글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추측해본다. 거의 모든 글의 주제가 '사랑'이다. 다만 사랑을 할 수 없고, 관심 없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보면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듯 하지만, 결국 거의 모든 글은 사랑이니까. 무엇인가를 성실하게 미워하는 것도 상상 이상의 칼로리 소모를 요한다. 그것을 떠올린다는 건 그만큼 자신에게 크다는 거다. 상처가 큰 것일 수도 있고, 부정이 긍정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고. 사랑에 대한 부정으로 가득한 블로그를 보고 나니, 마음에 남은 건 사랑이다. 즐겨찾기에 저장된 페이지 제목을 '사랑'으로 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자주 하는 말을 떠올려 본다. 어떤 소재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 어떤 가치에 대해 자꾸 말하려 하는가. 난 이게 좋아, 난 이게 싫어, 라는 직접적인 표현보다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살펴본다. 무의식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무의식은 결국 빈도로 드러나지 않을까.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단어를.


"쉽지 않아."


내가 제일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자주 쓰는 단어는 뭐가 있을까. 요즘은 만나서 대화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다. 대화를 자주 하면 상대에게 듣거나 내가 느낄 텐데, 내가 자주 하는 말을. 나는 지금 어떤 말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내 글을 읽어보는 걸 안 좋아하지만, 연말에 집에서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기분으로 내 글이나 다시 읽어보면 알 수 있을까. 요즘의 나는 어떤 말을 품고 살고 있는 건가.



*커버 이미지 : 프레데릭 레이턴 '타오르는 6월'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약점이 나를 대표하는 건 슬프니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