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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Dec 23. 2020

2년 만에 야근

오랜만에 야근을 하다

1년 반을 프리랜서로 지냈다. 프리랜서에게 야근이란 없다. 노동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삶과 노동이 잘 분리가 안 된다. 미루다가 밤에 일을 할 때도 많았다. 밤이 좋아서라기보다, 미루다 보면 결국 밤이 찾아왔으므로. 


오늘은 거의 2년 만에 야근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측 못할 야근은 아니라는 거다. 어제 갑작스럽게 통보받은 업무가 있었고, 어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야근이 일상이던 회사에서는 야근이 자연스러웠으나, 늘 칼퇴하는 회사에서는 한 번의 야근이 크게 다가온다. 이직 후에 이렇게 늦게까지 회사에 남은 건 처음이다. 예고 없는 야근으로 내가 계획한 저녁시간이 뜻대로 흐르지 않으면 마음이 안 좋다.


야간 업무에 대한 통보를 받지 못했어도 야근을 하긴 했어야겠다 싶을 만큼 바쁜 하루였다. 오전에 있던 회의가 길어진 게 크다. 회의 주제에 대한 논의보다는 서로에 대한 견제와 태클로 힘들었다. 누군가의 기싸움은 누군가의 야근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야근을 예상한 덕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았다.


신발을 사고 나면 한동안 사람들의 신발만 보이는 것처럼, 야근을 하고 나면 스쳐가는 사람들도 야근을 했나 싶다. 다들 야근을 한 걸까. 야근이 익숙한 사람도 저 중에는 있을 거다. 나는 더 이상 그런 삶을 바라지 않게 된 거고.


이렇게 가끔만 해도 싫은 야근인데 어떻게 매일 같이 야근을 했을까. 오랜만에 야근을 한 덕분에, 야근이 익숙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시간만 보내도 생산성이 늘어났다고 느낀 것 같다. 야근을 성실함의 증거로 봤다. 회사도, 나도. 


오늘 하는 야근이 싫어서, 합리화를 잔뜩 했다. 이왕 하는 거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정작 바빠서 금방 지나갔고, 뭐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노동은 중요하지만, 직장인 모드에 너무 열중하면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드니까. 퇴근 후에는 확실하게 직장인 모드를 OFF 할 필요가 있다. 


다음 야근은 언제일까. 야근은 없기를 바라며 오랜만에 야근을 한다. 회사에 오래 있으니 괜히 보람차다.  노동자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끔 하다니, 회사는 역시 영악한 곳이다. 가끔 하는 야근이야 뭐, 라는 생각 대신 야근을 경계하고 미워할 거다. 그래야 야근에 기겁하며, 야근과 먼 삶을 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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