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 day 1 scen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 Oct 26. 2020

'뭐해'라고 타인에게 묻지 않는 이유

심심함과 외로움을 티 내는 게 망설여져서

"뭐해?"


돌아보니 몇 년간 써본 적이 없는 말이다. 내게 '뭐해'라는 말은 아주 가까워야 가능한 표현이다. 딱히 목적이 없어도 막연하게 근황을 묻는 말. 뭐해, 잘 지내, 같은 말들. 


언젠가부터 나의 심심함이나 외로움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게 망설여진다. 심심함보다는 바쁨을 보여주고, 외로움보다는 단단함을 보여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 이런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빈틈없어 보이기도 하고, 나의 솔직한 마음을 말하면 방어적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전자는 틀리고 후자는 맞다. 나는 빈틈이 너무 많아서,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방어적으로 군다.


내게 뭐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 솔직하게 답하면 되는데 굳이 그럴듯하게 포장된 상황으로 대답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으면서 괜히 바쁘게 뭘 하고 있었다고 답을 한다. 침대에 누워서 멍하게 있었으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컴퓨터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으면서 있지도 않은 약속을 나갈 준비를 한다고 말한다. 


근황을 물어주는 이들이 고맙다. 그리고 이왕이면 고마운 그들에게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자주 마주하는 내 모습,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걸 아직 망설이는 듯하다. 누구나 심심하고 외로울 텐데, 나는 나의 심심함과 외로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뭐해'라고 묻지 못한다. 그 두 글자 안에 내 마음은 어떻게든 담겨있을 거고, 그걸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아무리 단단한 척 해도, 결국 타인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도 사람이라, 타인에게 '뭐해'라고 묻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 내가 선택하는 건, 명분을 만드는 일이다. 머리를 쥐어짜도 명분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연락을 포기한다. 괜찮은 레퍼토리라도 생기면 좋을 텐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맥락이 다른지라 레퍼토리도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한 '뭐해'보다도 못한, 어색한 명분으로 연락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의 미련함에 통탄하게 된다.


술에 취할 일도 없고, 이성의 끈을 놓을 일도 없는 생활패턴과 정신을 가진 덕분에 뜬금없이 '뭐해'라고 물을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많이 궁금하다. 당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말이다. 밤을 핑계 삼아서 '뭐해'라고 보낼까 하다가, 오늘도 그냥 잠들기로 한다. 잘 지낼 거라고 믿기로, 연락 대신 상상으로 마무리.



*커버 이미지 : 뭉크 '여름밤'

매거진의 이전글 모르는 사람의 생일 알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