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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 day 1 scene

안약을 넣는 시간

눈을 느끼기

by 김승

원추각막으로 눈 수술을 한지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인공눈물부터 안압약까지 여러 약을 눈에 넣는다. 자기 전에 하는 일은 내일 넣을 안약을 체크하는 거다. 집에 방치해두던 악보를 꺼내서 한 장을 찢는다. 시간을 쭉 적어나가고, 안약을 넣을 시간을 시간대별로 적어둔다. 다음날 눈을 뜨면 아침부터 밤까지 넣을 안약을 잊지 않기 위해서.


눈이 나아진 건지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2주에 한번 정도 병원을 가서 의사의 말을 믿을 뿐이다. 좋아지고 있네요, 조심해야 해요. 나의 눈이지만 나는 나의 눈 상태를 알 수 없다. 건조할 때 인공눈물을 넣는 것 말고는 내 의지로 가늠할 수 있는 게 없다. 인공눈물이 오히려 더 건조하게 만든다는 풍문을 들은 뒤로는 인공눈물을 넣어도 되나 괜한 걱정도 했다.


원추각막은 눈이 뾰족한 게 특징이다. 수술을 마친 뒤 그런 특징을 아는 이들은 내게 '이제 뾰족눈 탈출이네'라고 말했다. 이전에 내 눈이 뾰족했는지는 특수한 기계로만 확인할 수 있고, 지금 내 눈이 뾰족함에서 탈출했는지도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 나는 내 눈이 뾰족한 걸 알지만, 그걸 느낄 수는 없다. 내 눈에 대해 말할 때면, 미국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 알지만 가보지 못한 내 상황처럼 느껴진다. 눈을 눌러본다고 해서 느껴지는 것도 아니니까. 참고로 눈을 누르고 비비는 건 눈에 매우 안 좋다.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타서는 안약 넣을 시간을 체크해본다. 수술 초기에는 20분에 한 번씩 인공눈물을 넣었는데, 지금은 귀찮아서 1시간에 한번 넣기도 한다. 하루에 네 번 넣어야 하는 안약은 최대한 신경 쓰고 싶은데, 회사에서 갑자기 회의라도 잡히면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넣을 때가 많다. 안약을 넣는 행위가 일상적이지 않기에, 굳이 티를 내고 싶지는 않다.


수술 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수술한 왼쪽 눈이 잘 안 보인다. 시력이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요즘은 늘 안경을 쓰고 다닌다. 마스크 위에 어떻게 안경을 써도 왜 이렇게 김이 서리는 걸까. 안경 쓴 내 모습이 싫은데, 눈 건강이 우선이니 쓰고 다닌다.


원추각막 수술이 잘 되면 렌즈삽입술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비싸기도 하고 눈이니까 조심스럽다. 하루 종일 무엇인가 보고 있다. 눈이 없다면 감각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내 눈이 어떤지는 잘 못 느끼지만, 눈을 통해 느끼는 건 너무나도 많다.


요즘은 일찍 잔다. 눈이 피곤해서. 자기 전에는 눈의 건조함을 막는 약을 바른다. 눈 밑에 약을 짜고 감으면 눈에 약이 묻어난다. 흐린 눈이 더 흐려진다. 눈 표면에 이물감이 잔뜩 든다. 눈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 내일 눈을 뜨면 다른 안약을 넣자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은 채 눈을 굴려본다. 분명 뾰족하다고 했는데 둥글게 느껴지는 눈을 느껴본다.



*커버 이미지 : 주세페 아르침볼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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