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 day 1 scene

친절한 당신은 나와 먼 그 사람을 닮아서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만나고

by 김승

퇴근하고 딱히 할 일이 없으면 헬스장으로 간다. 체력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살을 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간다. 오늘 하루 중에 그래도 헬스라는, 제법 생산적인 것을 해냈다는 자기 위안.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으면서 운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게 운동은 늘 '설렁설렁'을 유지하는 정도에 머문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설렁설렁 운동을 했다. 이전 헬스장에서는 오지랖 넓은 아저씨들이 와서 옆에서 자세를 봐주겠다고 하며 다가오기도 했는데, 다행히 이곳에서는 그런 분은 없다.


"제가 자세 좀 봐드릴까요?"


트레이너 복장을 입은 이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분명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내가 아는 이와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팔이 너무 바깥쪽으로 나오셨는데, 좀 안쪽으로 하셔야 해요."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친절한 표정이 눈앞에 보인다. 말투에서 친절함이 뚝뚝 묻어난다. 지금 이 사람과 닮은, 내가 아는 사람과는 반대로 말이다.


내가 단숨에 떠올린 사람은 '기계'로 불릴 만큼 무뚝뚝한 사람이다. 여태껏 본 사람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운동할 시간도 없이 일만 해서 잔병에 자주 시달렸다. 만약에 그가 갑자기 양복을 벗고 트레이닝 복장을 입고 트레이너가 된다고 하면 주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까 하시던 저 운동도 제가 자세 봐드릴까요?"


트레이너의 호의는 계속된다. 이 사람도 내가 아는 그 사람처럼 똑똑한 사람일 것만 같다. 누군가를 처음 보면, 그 사람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다 보니 닮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이 사람과 닮은 그 사람은 이랬었으니까, 조금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대부분은 이런 일반화가 무색할 만큼 다르다. 사람의 성격은 외모에 비해서 훨씬 닮기 힘드니까.


"오티는 이미 받으신 거죠?"


아주 먼 친척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스크를 벗으면 더 닮은 건 아닐까. 오히려 마스크 뒤로 전혀 다른 얼굴이 있으려나. 그런데 만약에 너무 닮았다고 한들, 이 사람과 닮은 그 사람은 나와 먼 사람이 되었는데.


"그럼 운동 잘하다가 가세요."


나는 앞으로 헬스를 계속 갈 거고, 이 사람도 아마 당분간 계속 트레이더로 있을 거다. 계속 마주칠 확률이 높고, 인사를 하다 보면 친해질 수도 있을 있겠지. 이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나와는 이젠 별 상관도 없는 그 사람이 떠오를 거다. 이전에도 별로 친하지 않았고, 접점도 없는데 닮은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자주 떠올리게 된다면, 이보다 아이러니하기도 쉽지 않을 거다.


'저는 그쪽이랑 닮은 사람을 알아요. 저랑은 안 친한 사람이고, 앞으로 볼 일도 없어요. 근데 그냥 그렇다고요.'


쓸모없는 상상을 하면서 러닝머신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세상엔 제법 닮은 사람들이 많다.



*커버 이미지 : 영화 '러빙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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