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 day 1 scene

말은 많은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회사

영화 '10분'

by 김승

공포영화를 안 좋아한다. 보는 순간에는 짜릿하지만, 막상 보고 나면 계속 떠올라서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다. 새벽에 집에 가거나 늦은 시간에 샤워할 때면 공포영화 속 장면이 떠올라서 무서워하며, 괜히 공포영화를 봤다고 후회한다. 좋은 영화들 중에 공포영화도 있기에 가끔 보지만, 되도록 안 보려고 한다.


노골적인 공포영화, 예를 들어 귀신이 나오거나 괴물이 나오는 영화는 딱 봐도 장르가 공포이므로 피할 수 있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공포영화가 있으니, 바로 현실적인 드라마들이다. 너무 현실적이라 무서운 영화들. 예를 들면 영화 '10분' 같은 작품.


영화 '10분'은 회사생활에 대한 영화다. PD가 되고 싶은 주인공은 현실적인 이유로 한 기업의 비정규직으로 들어간다. 야근을 많이 하지만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PD 준비보다 오히려 인정도 받는 지금의 회사생활이 좋아 보인다. 집안에서도 출퇴근하는 아들을 좋아하며, 정규직이 되기를 바란다. 회사에서도 주인공에게 정규직 전환을 이야기하고, 주인공도 오랜 시간 품었던 PD 대신 직장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회사는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 갑자기 말을 바꾸고, 주인공은 당황한다.


'10분'은 보는 내내 힘들었던 영화다. 마침 이직하고 얼마 안 되어서 이 영화를 보았기에 더욱 그랬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사수로 지내던 이는 회사를 떠나면서 말한다.


"여기는 말은 많은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대사이자, 내 눈에 이 영화가 공포영화로 느껴진 이유이다. 귀신과 괴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영화적인 과장으로 느껴지지만, '10분'이 보여준 직장 풍경은 내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늦은 시간 집에 갈 때 영화 속 귀신이 떠올라도 그것은 상상에만 머물지만,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10분' 속 회사 사람들은 말은 많은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상식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야근이 일상이 될 만큼 많은 일을 떠맡기고, 주말에 등산 모임 참석을 은근슬쩍 강요하고, 사내 정치에서 자신의 라인을 타라고 말하며 파벌을 만들고,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전가한다. 이러한 풍경들을 보는데 숨이 턱턱 막혔다. 영화적인 연출이라고 하기에는,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주인공에게 10분의 시간을 주며 끝낸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선택을 10분 만에 하라면서. 영화의 제목은 '10분'이지만 영화 속 풍경은 10년은 가겠다 싶을 만큼, 아주 긴 시간 공포로 남아있다. 직장인에게 공포영화를 추천하라면, 괴물처럼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10분'을 추천하겠다.



*커버 이미지 : 영화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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