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의 정체성
"제일 잘 쓰는 글이 뭔가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아직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그 스타일을 잘 모르겠다. 읽는 이들 입장에게 염치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난 내 글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정의할 만큼 명확한 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속한다고 카테고리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내 생각뿐만 아니라, 주변의 반응도 그렇다.
"이건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워요."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쓴 소설을 들고 당시 교양 수업을 통해 만나 뵌 평론가 선생님께 내 소설을 봐달라고 했다. 분명 소설인데 시 같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시보다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떨까?"
중, 고등학교 때는 내 시를 읽고 소설을 권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아마 산문시였기 때문일까. 이렇게 길게 쓸 거면 그냥 소설을 쓰라는 뜻이었을까.
"너무 가볍게 쓰는 거 아니야?"
내가 쓴 시나 소설에 대해 자주 듣던 피드백이다. 글은 무겁게 쓴다는 건 무엇일까. 내 소재나 문체가 너무 가벼운 걸까. 나는 농담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너무 무겁게 쓰는 거 아니야?"
막상 회사에 와서 글을 쓸 때는 무겁게 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중을 위한 콘텐츠는 가벼워야 한다지만, 읽자마자 휘발할 만큼 가벼운 걸 원하는 걸까.
이리저리 치이면서, 내 글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카테고리 분류를 할 때 난감한 글. 개성이 필요한 시대라지만, 사람들은 '적당히 분류 가능한' 개성을 좋아하지, 아예 분류조차 힘든 건 개성이 아니라 못 본 척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매일 에세이에 가까운 글을 쓰고 있고, 소설이나 시는 쳐다도 안 보고 있다. 매일 읽는 건 소설이다 보니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이런저런 평가를 받으면서 마음에 벽을 만들었다. 어차피 써봐야 이상한 소리밖에 더 들을까 싶은. 나는 나 좋자고 쓰는 글이 아니라,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니까.
어디에도 속한,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려면 꾸준함 밖에 답이 없다. 그 어디에 속하지 못한 글도 쌓이다 보면 나름대로 작은 카테고리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커버 이미지 : 프란츠 마르크 '푸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