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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 day 1 scene

다들 별로라는 영화에게서 받는 위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의 순작용

by 김승

좋은 영화를 보려고 노력한다. 좋은 영화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좋은 영화를 고르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참고한다. 영화 평론가들의 베스트 영화 목록이나 별점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가 참여한 작품을 보기도 한다. 세상에 좋은 영화는 생각보다 많고, 평생 몇 편이나 볼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늘 짜임새가 좋은, 완벽에 가까운 영화만 본다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영화도 예술이다 보니 의외성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분명 완성도가 별로인데 마음이 가는 영화가 있다. 다들 안 좋아하는데 나만 좋아하는 영화. 이런 영화를 발견할 때 오히려 모두들 좋다는 영화를 볼 때마다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는 불리할 수도 있는 게, 관객 입장에서는 이미 많은 이들로부터 검증받은 영화에 대해 높은 기준을 가지고 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오히려 기대를 안 한 영화에는 후한데, 좋다는 영화 앞에서는 높은 기준을 갖다 대기도 한다.


최근까지도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보았다. 정확히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 평론가들의 연말 베스트 목록의 교집함으로 언급되는 영화. 그러한 영화들만 보다가 갑자기 답답함을 느꼈다. 분명 좋은 것들만 봤는데 말 못 할 갈증이 났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생각 없이 볼 영화를 골랐고, '타짜 : 원 아이드 잭'을 보았다. 왓챠나 네이버 평점만 봐도 엄청나게 낮은 평점을 자랑한다. 그 덕분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볼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해 나쁜 점을 지적하라면 몇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별생각 없이 보기 좋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본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은 엄청난 기대를 하고, 한 장면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봐서 그런지 좋은 영화임에도 보고 나니 피곤했다. 반면 '타짜 : 원 아이드 잭'은 길티 플레져를 즐기는 기분으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아마 나중에 나의 베스트 영화 목록에 '타짜 : 원 아이드 잭'을 뽑게 될 일은 없을 거다. 가끔 평론가들의 베스트 영화 목록에 대부분의 관객들이 혹평한 영화들이 올라와 있을 때 힙해 보인다고 느꼈는데, 나는 안전한 선택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기대 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던 영화 목록에는 '타짜 : 원 아이드 잭'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나쁜 영화도 있기에 좋은 영화가 존재한다. 좋은 영화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 누가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을까. 개봉 당시에 혹평을 받았다가, 훗날 재평가받는 영화들이 많은 이유는 실험 정신 때문일 거다. '타짜 : 원 아이드 잭'이 딱히 실험 정신을 가진 영화는 아니지만, 분명 괜찮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나만 하더라도 이 영화 덕분에 오늘 한 편의 글을 쓰고 있으니까.


훗날 내가 본 영화 목록을 정리할 때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 같은 제목의 책에 나오는 영화만 있다면 그것도 심심할 것 같다. 세상은 내 기대와 달리 실망할 일이 훨씬 많다. 차라리 별 기대 안 하고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므로 가끔은 아무런 기대 없이, 어쩌면 최악일지도 모르는 영화를 굳이 찾아보겠다. 기대를 안 했을 때 찾아오는 기쁨을 발견하는 연습은 내 삶에도 제법 이로울 테니까.



*커버 이미지 : 영화 '타짜 : 원 아이드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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