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이별 풍경
A는 이별을 결심한다.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언젠가 이별이 찾아온다면 거대한 사건 때문일 줄 알았지만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침착하게 사소하다고 말하지만, 마음에게는 꽤 큼직하게 다가온 일이다. 상대가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그 말에서 긴 연애가 끝났음을 느꼈다. 천일이 넘은, 꽤 긴 연애였다. 나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했고,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가벼운 말은 내 귀에 무겁게 자리를 잡았다. 귀에서 마음까지 단숨에 내려온 그 말은 이별에 대한 결심으로 이어졌다. 이별을 고민하게 하는 일들은 그동안 많았는데, 이별을 결심하게 된 건 허탈할 만큼 작은 말 때문이다.
"할 말이 있으면 집에서 할까?"
할 말이 있다고 하자, 상대는 집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카페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 온 연애의 역사는 카페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만큼,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카페에서 나눈 사소한 대화들이 좋았다. 연애를 시작할지 고민하던 당시에도, 고민을 결심으로 바꾼 건 작은 말들이었다. 이별을 결심한 지금과 마찬가지로.
"한강으로 가자."
아무리 생각해도 집은 아니었다. 카페가 아닌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고, 한강 말고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체감온도가 영하였지만,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향할 수 있는 방향이 그 사람이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걸 체감하기 위해서라도 그게 좋을 것 같았다.
"우리 헤어지자."
만약에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카페에서 이별의 말을 했을까. 테이블 간격이 좁은 카페였다면, 이별의 말을 꺼내기 불편하지 않았을까. 패딩 대신 코트를 입은 게 후회될 만큼 추운 날씨 속에, 얇은 러닝복을 입고 뛰는 이들이 보인다. 옆에서 이별의 말을 듣는, 몇 분 두면 옛 연인이 될 사람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는 걸 느낀다. 날이 춥기 때문일까. 흔들 다리에서 불안함을 설렘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추위를 이별의 온도로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
카페에 갈 수 없는 시대의 이별은 어디에서 이뤄질까. 나는 한강을 택했다. 이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눈을 뜨면 그 사람에게 연락하고, 퇴근 후 그 사람을 만나고, 잠들기 전 그 사람에게 연락하고, 주말이면 그 사람과 데이트를 했다. 이젠 그 사람이 목적지인 수많은 선택지들이 사라진다. 어디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간다. 한강이 이렇게 넓었나. 넓은 길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지도 앱을 켜보려다가 관둔다. 발이 닿는 대로 어디든 가보기로 한다. 넓지만 걷다 보면 어딘가 나올 테니, 걷기로 한다.
*커버 이미지 : 클로드 모네 '라 그르누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