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치아가 안 좋아서
"이렇게 양치질 열심히 하는 사람 처음 봐요."
살면서 칭찬받을 일이 많지 않지만, 양치질과 관련해서는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보았다. 회사 화장실에서 평소처럼 열심히 양치질을 하면, 옆에서 분노의 양치질을 보는 것마냥 신기하게 보는 이들이 존재한다. 나는 강박적으로 열심히 양치질을 하는 편이다. 내가 가진 수많은 강박 중에 하나로, 내겐 식사 후에 양치질까지 해야 하나의 루틴이 끝이다. 여기서의 양치질에는 리스테린과 치실까지 포함되어 있다.
"커피랑 담배를 줄이셔야겠어요, 착색이 심하네요."
나는 냄새가 싫어서 담배를 피우지 않고, 커피도 써서 안 마신다. 치아 착색의 원인이 된다면 녹차와 콜라도 안 마신다. 매일 담배 피우고, 커피를 끼니마다 마시고, 심심할 때 콜라와 녹차를 마시면 모르겠는데, 하지도 않은 일로 이런 의혹을 사니 억울하다. 입을 벌린 채 '저 안 마셔요'를 발음하려니 '어 앙마서요'라는 알아듣지 못할 말이 나온다.
"치아도 타고나야 해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양치질을 하는지, 담배와 커피를 하지도 않는다고 열심히 해명을 했고, 돌아온 답은 허무했다. 역시 타고난 걸 이길 수 없다. 나는 그저 착색이 잘 되는 치아를 타고난 거다. 누렇고 검게 변해가는 나의 치아를 보며 사람들은 생각할 거다. 저 사람은 양치를 안 하나, 담배를 얼마나 피우는 걸까, 커피 중독인 걸까, 얼마나 게으를까, 상상은 점점 안 좋은 쪽으로 간다. 사람은 겉모습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치아로도 평가하면 안 된다.
"양치를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안 좋아요."
빡빡 닦는 양치질 습관이 마냥 좋은 건 아니라고 한다. 과유불급은 모든 일에 해당한다. 사과나 주스처럼 단 음식을 먹고 바로 양치질을 하는 게 안 좋다는데, 바로 양치질을 안 하면 양치질을 잊어버린다. 양치질하는 시간이나 방법 등은 왜 치과마다 하는 이야기가 다 다른 걸까.
스케일링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다시 스케일링을 한다. 혓바닥 끝으로 스케일링이 끝난 치아를 만져본다. 지금의 이 감각을 기억하자. 곧 착색되고 치석도 잘 생기는 나의 치아가 얼마나 갈지. 틀니처럼 치아를 통째로 빼서 닦는 다음에 다시 입에 집어넣는다면 괜찮으려나.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는 결론 대신 열심히 한 덕분에 그래도 이 정도로 유지된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양치질을 하고 나서 뭐라도 해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건 놓칠 수 없는 순간이니까.
*커버 이미지 : 제임스 앙소르 '슬퍼하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