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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 day 1 scene

MBTI를 얼마나 믿으세요?

MBTI를 이야기할 때

by 김승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이직을 준비하면서 출판사 면접을 봤었는데, 처음으로 받았던 질문이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지인에게 물어보니, MBTI를 굉장히 신뢰하는 회사라고 한다. 주기적으로 MBTI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고 들었다. 당연히 맹신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MBTI가 회사에서 서로를 파악하는 데 사용된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나의 MBTI는 INTJ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시즌에는 ENTJ가 나오기도 하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건, INTJ다. MBTI가 가장 큰 가치는 자기소개의 편리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 가서 INTJ라고 하면, 특징에 대해 줄줄 읊어주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떤 부분이 맞고, 어떤 부분이 덜 맞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된다. 나란 사람을 설명할 키워드가 하나 더 생긴 기분이라, 편리하게 느껴진다.


내 주변에 가장 많은 유형은 ENFP다. 친해진 뒤에 MBTI를 물어보면 ENFP인 경우가 많고, 나중에 들어보니 INTJ와 ENFP가 잘 맞는다고 한다. 잘 맞는 유형이 따로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무슨 심보인지 몰라도, MBTI로 봤을 때 나와 제일 안 맞는 유형의 이들과 정말 안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진다.


올해 초부터 MBTI와 관련된 각종 테스트들이 쏟아지고 있어서, 하면서도 MBTI가 얼마나 흥미로운 소스인지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놀 거리가 늘어나서 나쁠 건 없으니까.


다만 MBTI 혹은 이와 유사한 테스트를 할 때마다 질문에 답하는 게 쉽지 않다고 느낀다. 나란 사람이 어떤 항목에 있어서는 80대 20의 비율로 압도적인 성향을 가져서 선택 가능한 게 있지만, 49대 51의 비율로 선택하기 애매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답이 두 가지 중 하나라면 상관이 없는데, 6~7단계 정도로 답해야 할 때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나란 사람을 정량화하는 게 썩 쉽지 않음을 느낀다. 게다가 남들은 가볍게 할 MBTI 앞에서 나는 한없이 깊은 고민을 한다. 마치 답변 하나가 나의 성향을 완전히 다르게 판단하고, 그 결과를 남들에게 말해줘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며.


MBTI는 내 기분에 따라서도 결과가 다를 것 같다. 어떤 순간의 나는 엄청 밝은 사람이고, 어떤 순간에는 심각하게 어둡기도 하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양면적이고, 순간순간마다 드러나는 성향 또한 다르다고 생각한다. 소나무 같이 한결같아 보이는 사람도 결국 소나무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남이 생각하는 자신이 다른 경우도 태반이고.


무슨 띠로 태어나면 성격이 어떻더라, 혈액형이 그거인걸 보니 그런 성향이겠네, 별자리가 그거면 어떤 편이겠다 등 사람에 대한 단서로 쓰이는, 편리하게 그 사람을 분류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되어주는 것들이 몇 가지 있고 MBTI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나도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서라도 MBTI 이야기를 꺼내게 될 거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INTJ임에도 불구하고 ESFP라는 정반대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순간도 있을 거다. MBTI도 결국 모든 인간이 가진 요소 중 조금 더 두드러진 부분만 유형화한 것일 테니까.


평생 자신이 B형이라고 알고 살았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검사해보니 A형이었다는 걸 알게 된 친구가 떠오른다. 그 친구가 그전까지 스테레오 타입으로 생각되는 B형의 특징들을 보여주다가, 혈액형을 제대로 알게 된 후로 A형처럼 굴게 되었다고 느꼈는데 기분 탓일까. MBTI를 하다 보면 자꾸 그 친구가 떠오른다. 나도 어느새 나를 INTJ의 요소 안에 자꾸 끼워 맞추려고 하는 건 아닐까. 그게 더 편리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란 사람은 내가 봐도 너무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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