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육을 삶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주문한 떡이 온다. 빵과 떡 중 하나를 고민하겠지만, 요즘은 떡이 더 좋다. 시루떡이 며칠은 먹을 수 있을 만큼 큰 사이즈로 온다.
수육과 떡, 과일 등을 준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오늘은 고사를 지내는 날이다. 코로나여도 고사는 지낸다. 딱히 사람과 접촉이 있는 건 아니고 집에서만 지낼 거기 때문이다. 술을 안 좋아하지만, 괜히 이런 날에는 준비된 막걸리도 한잔 마시고 싶어 진다. 약 때문에 술은 안 마시기로 한다.
고사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영화 촬영을 앞두고 진행되는 고사 현장이다. 돼지머리가 올라가 있고, 배우들이 돼지머리에 돈을 꽂는 모습. 잘 되길 기원하며 고사를 지낸다. 고사의 기운이라는 게 진짜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모여서 으쌰 으쌰 하는 게 나쁘지는 않을 거다.
우리 집도 매년 고사를 지낸다. 이유를 물은 적은 없지만 당연하게 느낀 것 같다. 그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제사 하듯이 매년 고사를 지낸다. 그래도 안 한 것보다는 한 게 나을 테니. 품을 많이 들이지 않고 매년 당연하다는듯 고사를 지내며 절을 하고 이것저것 소망한다.
집 곳곳에 막걸리를 한 잔, 떡을 한 접시씩 올린다. 거실, 안방, 화장실, 내 방, 동생 방, 옥상 등에 올린다. 올린 곳마다 가서 절을 한다. 화장실처럼 좁은 공간에서는 반절을 한다. 이젠 고사도 매년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요령이 생긴다. 절을 하면서 모든 게 잘 되길 바란다. 작년에는 어떤 걸 소원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침 얼마 전에 책이 나와서, 오늘은 책이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딱히 종교는 없지만, 누군가는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해본다. 책이 잘 된다는 건 뭘까. 출판사에서 좋아할 만큼은 팔렸으면 좋겠고, 내 책을 읽었을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이들에게는 책이 닿았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많은 운이 필요한 일이다.
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부모님께는 말씀 못 드렸다. 아니, 앞으로도 못 드릴 거다. 내가 고사 지내는 동안 어떤 소원을 빌었을지, 부모님은 궁금해하지 않을까. 고사가 끝나고 함께 수육과 떡을 먹으면서도 따로 소원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다. 오늘 유난히 더 맛있게 느껴지는 수육과 떡처럼, 나의 책도 누군가에게 맛있게 느껴지면 좋겠다. 당분간은 매일 고사를 지내는 기분으로, 잘 되길 바라본다.